영화 ‘롱 리브 더 킹’으로 2년 만에 스크린 컴백
“인생 캐릭터 만났다고요? 좋은 감독님 만난 덕분이죠”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영웅’으로 호평받고 있는 김래원은 “옳은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는 격려 같아 기쁘지만 들뜨지는 않으려 한다”며 “나는 지금도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부끄럽지 않은 영화 만들었응께 잘 좀 봐 주쇼!” 배우 김래원(38)은 느릿한 중저음 서울말로 얘기했는데, 귀에는 구수한 목포 사투리로 들렸다.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영웅’(19일 개봉)이 남긴 강렬한 잔상에서 비롯된 ‘환청’이다. ‘희생부활자’(2017) 이후 2년 만에 돌아온 스크린에서 김래원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인생을 바꾼 ‘순정파 조폭’ 장세출을 연기한다. 로맨틱하고 도회적인 이미지에 정감 어린 향토색이 덧입혀지니 김래원이 새롭게 보인다.

목포 최대 폭력조직 보스 장세출은 철거 용역으로 나간 재개발 현장에서 강단 있는 변호사 강소현(원진아)을 만나 첫 눈에 반한다. 강소현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조직도 정리한 그는 우연히 버스 추락 사고에서 시민을 구하며 목포 영웅으로 떠오르고, 예기치 못하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한 김래원은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전혀 고민 없이 출연을 결심했다”며 “감독을 전적으로 신뢰했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 포기 안 하니까 말리지 마쇼!” 조폭 생활을 청산하고 선거판에 뛰어든 장세출은 서민의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좋은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롱 리브 더 킹’은 데뷔작 ‘범죄도시’(2017)로 688만 흥행을 일군 강윤성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범죄도시’를 재미있게 본 김래원은 앞서 출연을 약속해 둔 영화에 양해를 구하고 ‘롱 리브 더 킹’을 먼저 찍었다. 그는 “‘범죄도시’에선 대사가 별로 없는 작은 배역까지 다 빛나더라”며 “이런 감독과 함께하는 작업이라면 도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김래원이 가장 많이 언급한 이름도 ‘강윤성’이었다. 장세출에게 ‘인생을 바꾼 한 사람’이 강소현이라면, 김래원에겐 강 감독이 그런 존재였다. 강 감독은 평소 잘 다듬어진 연기를 해 온 김래원을 신세계로 이끌었다. “예컨대 하늘을 날아 어느 지점에 도착하는 장면을 찍는다면, 보통은 ‘바람을 등지고 날개를 편 뒤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날아가라’고 배우에게 정확한 설명을 해 주죠. 그런데 강 감독님은 안 그래요. 어느 방향으로 날아갈지, 도착 지점이 어딘지 배우에게 물어보고 ‘한번 가 보자’고 하는 식이에요. 날아가다 떨어질 수도 있는데 그 나름대로 또 인정해 주고요. 어떻게 찍어야 할지 감이 안 올 때는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얘기하면서 배우뿐 아니라 막내 스태프에까지 의견을 물어요. 함께 만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니까 더욱더 열정을 발휘하게 돼요.”

주어진 자유 안에서 김래원은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매력을 꺼냈다. 평소 그의 성격을 닮아 장세출도 진지한 캐릭터가 됐고 ‘조폭스러운’ 위협감은 옅어졌다. 상반신 노출 장면을 위해 3개월간 몸을 만들고도 불필요하다 싶으면 과감히 포기했다. 잠시 스쳐가는 장면이지만 만취해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려고 촬영 전 일부러 잠을 청하기도 했다. 즉흥 대사도 많이 시도했다. “이 장세출이 국회로 보내 주쇼”라며 목포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마지막 유세 장면은 김래원의 진심이 느껴져 뜻밖의 감동을 안긴다. “사실 연설문을 완벽하게 못 외운 상태로 촬영했어요. 대사의 의미만 숙지하고 제가 느끼는 장세출의 진심을 자유롭게 표현했죠. 연설을 못할 정도로 감정이 북받쳐 오르더라고요. 눈물 참느라 혼났습니다.”

김래원은 유명한 낚시광이다. 얼마 전 ‘도시 어부’ 촬영을 다녀왔다. 그는 “5박6일 촬영이 정말 힘들더라”며 “회 뜨는 실력이 엄청 늘었다”고 웃음지었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1997년 MBC 드라마 ‘나’로 데뷔한 김래원은 MBC ‘옥탑방 고양이’(2003)와 ‘넌 어느 별에서 왔니’(2006), SBS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2005), ‘천일의 약속’(2011), ‘닥터스’(2016) 등 주로 로맨스 드라마로 인기를 누렸다. 스크린에선 반대로 ‘해바라기’(2006)와 ‘강남1970’(2015), ‘프리즌’(2017) 등 거친 누아르에 도전했다. ‘롱 리브 더 킹’은 김래원의 두 갈래 행보가 한 지점에서 만나 합쳐진 듯한 작품이다.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호평도 들린다. 하지만 그는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이라고 손사래를 치며 “좋은 감독님을 만나 새로운 작업 방식에 훈련됐다는 사실이 내겐 더 의미 있다”고 말했다.

10대 때 연기를 시작한 탓에 30대 후반인데도 연기 경력은 20년이 넘는다. 그만큼 대중에게 익숙해져 신선함을 잃은 것 아닐까 걱정하던 그에게 ‘롱 리브 더 킹’은 자극제가 됐다. “일에는 무섭게 집중하는 편이에요. 긴장을 내려놓으면 열정도 식는 것 같아서 불안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새로 깨달았어요. 빈 틈이 있을 때 오히려 더 큰 재미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요.”

김래원은 삶에도 변화를 줄 생각이다. 조카 만나러 본가에 들르거나 날씨 좋은 날 산책할 때 말고는 주로 집에 있거나 낚시하러 떠났다. 얼마 전 5박 6일간 ‘도시어부’ 촬영을 다녀왔다. “이젠 사람도 많이 만나면서 고립된 생활에서 벗어나려고요. 그러면 저를 좀 더 내려놓을 수 있겠죠.”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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