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K팝 소비… 관계지향적 팬덤 ‘수출’ 효과
해외 곳곳 변화… 파리 지하철 SNS에 한글 안내까지
K팝 해외 팬들 사이 요즘 입소문을 타는 ‘호소문’이 있다. 어렵게 음악 활동을 하는 한국 가수가 있으니 관심을 가져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의 마지막 신곡이 될지도 모르는 ‘에덴’을 많은 사람이 들어 팀 해체를 막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영어로 쓰인 이 글엔 밴드를 향한 애틋함이 절절했다. 록밴드 아이즈 얘기다.
아이즈는 해외 K팝 팬들에게 어떻게 ‘아픈 손가락’이 됐을까. 밴드의 소속사 뮤직K엔터테인먼트 권창현 대표에게 들은 사연은 이렇다.
2017년 데뷔한 아이즈는 지난해 일본에서 45명이 채 안 되는 관객 앞에서 공연했다. 아주 소규모 공연이었지만 밴드는 찾아준 관객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도시락을 직접 건넸다. 그 안엔 밴드의 네 멤버가 쓴 편지도 담겨 있었다. 신인으로 고된 길을 걷고 있지만, 그 길에 힘을 보태준 팬들에 대한 답례였다.
이 사연을 알게 된 아이즈의 해외 팬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밴드 지지 글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아미’(방탄소년단 팬덤)를 비롯해 ‘엑소엘’(엑소 팬덤), ‘원스’(트와이스 팬덤) 등 대형 K팝 팬덤에 도움도 요청했다. 엑소 등 다른 K팝 아이돌 그룹 해외 팬들은 아이즈의 ‘에덴’ 뮤직비디오 링크를 SNS에 공유했다. 권창현 대표는 “이 상황이 신기할 따름”이라며 “다만 밴드는 절대 해체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웃었다.
아이즈의 사례는 해외 팬들의 K팝 소비 방식이 갈수록 진취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미국 시장 강제 진출’을 이끈 것도 해외 팬들이었다. 해외 아미는 온라인 조직(BTSX50States)을 만들고 미국 전역 라디오 방송사에 방탄소년단 노래 신청 캠페인을 진행해 K팝의 주류 미디어 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
미국과 영국에도 특정 가수를 좋아하는 열성 팬은 있지만, 팬들끼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스타를 띄우려는 집단적 문화를 찾기는 어렵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K팝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의 관계 지향적인 독특한 팬 문화까지 해외로 옮겨 가 이뤄진 변화”라고 말했다. 멕시코 지하철엔 지난해 한국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 사진전이 열렸다. 멕시코 엘프(슈퍼주니어 팬덤)들이 현지에 그룹을 알리기 위해 행한 이벤트였다.
K팝의 두터운 해외 팬덤은 곳곳을 변화시켰다. “안녕, 컨디션 어때?” “오늘 저녁 한국 그룹 BTS가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 온대.” 지난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지하철 9호선과 13호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엔 이런 한글 메시지들이 각각 올라왔다. 방탄소년단의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 공연을 앞두고 프랑스 지하철 당국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해외 팬들을 위해 의욕적으로 선보인 ‘한글 서비스’였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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