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ㆍ민주화 훈장 덕 과분한 혜택
60세 정년 도입 3년 만에 또 연장 카드
청년ㆍ비정규직 등 노동약자 더 배려해야

 

‘평균 나이 55.5세, 재산 41억원, 학력 대학원졸, 남성비중 83%’. 대한민국 20대 국회의 모습이다. 법조계ㆍ관계ㆍ재계ㆍ언론계 등 다른 분야도 상황은 비슷하다. 586세대(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기득권 남성이 한국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한때 민주화에 헌신하며 노동약자에게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주겠다고 다짐했던 세대다. 하지만 그들의 자녀인 2030세대는 “586이 청년 비정규직 등에 대한 배려에 인색한 기득권 괴물이 돼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대근 기자

‘서른일곱 개의 방이 있던 그 집, 미로 속에 놓인 방들, 계단을 타고 구불구불 들어가 이젠 더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이 또 있던 3층 붉은 벽돌집…’ 작가 신경숙이 자전적 소설 ‘외딴 방’에서 묘사한 닭장 집이다. 그는 중학교를 마친 1978년, 고향을 등지고 상경해 구로공단에 취직했다. 서른일곱 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벌집 촌 외딴 방에선 앳된 여공들이 쪽잠을 자며 노동의 고단함을 견뎠다. 열여섯에서 스무 살까지 여공으로 살았던 그처럼, 오빠와 남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진학을 포기한 ‘효순이’가 흔하던 시절이었다.

신경숙은 나와 동갑이다. 또래 여성을 생각하면, 586세대(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남성으로서 늘 미안함을 느낀다. 남자라는 이유로 쉬 대학에 가고 취업했기 때문이다. 586 남성은 해방 이후 가장 복 받은 세대에 속한다. 80년대 초 남자의 대학 진학률은 30%. 여자는 그 절반에 그쳤다. 민간기업 중 대졸 여성을 뽑는 곳은 극히 드물었다. 이 무렵 한국경제는 연평균 10%씩 성장했다. 일자리가 차고 넘치는 완전고용의 시대였다. 가부장적 유산과 가난은 여성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요구했다. 여성들이 오빠나 남동생에게 대학 진학을 양보하지 않았다면, 민간기업이 남녀를 동등한 조건으로 뽑았다면, 586세대 남성의 오늘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실세그룹은 누가 봐도 586세대 남성이다. 20대 국회를 보자. ’평균 나이 55.5세, 재산 41억원, 학력 대학원졸, 남성 비중 83%’. 586 고학력 남성이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다. 법조계ㆍ관계ㆍ재계ㆍ언론계 등 한국사회 다른 분야도 SKY 출신 586 남성이 장악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진보정권의 주류 또한 586 운동권 남성이다.

정부가 만 60세 정년을 전면 도입한 지 3년 만에 정년 연장 카드를 또 꺼내 들었다. 홍남기 부총리는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이 연간 80만명, 진입하는 사람이 40만명”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정년제도를 없애자는 보고서를 내놨다. 정년 연장의 최대 수혜자는 586 남성, 그중에서도 노후 준비가 충실한 편인 공공부문과 대기업 정규직이다.

정년을 늘리면 생산 가능 인구가 늘어나고 연금재정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당연히 고민해야 할 과제다. 반면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 신규 고용을 줄일 우려가 크다. 사회적 비용의 총합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저성장 국면에 정년을 늘리면서 청년 일자리도 늘리기는 쉽지 않다. 실제 정년이 60세로 늘어난 이후 신규 고용이 위축됐다는 게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 결과다. 

586의 자녀 세대는 남녀 차별 없이 80%가 대학 교육을 받았다. IT 활용과 외국어 구사력도 뛰어나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자랑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 결혼을 꿈꾸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노동시장 내 경쟁이 부모 세대보다 두 배 이상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청년 실업률은 치솟았고 20대 우울증ㆍ불안증이 5년 새 두 배나 늘었다. 암울한 현실에 좌절한 많은 청년들은 “586세대가 노력에 비해 큰 혜택을 누리면서도 배려가 없다”고 여긴다.

586 남성은 가부장제에 젖어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이해를 못 한다. 그들이 장악한 국가가 여성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지 못하니 수백조 원을 쏟아부어도 애를 안 낳는다. 취업난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청년 구직자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한다. 586 국회가 청년 비정규직 등 노동약자를 배려하는 데 인색한 이유다. 586세대는 산업화,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 만큼 고도성장의 혜택을 누렸고 민주화 훈장 덕도 많이 봤다. 이제 공동체를 위한 건강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세대 교체에 눈감는 기득권 괴물이 돼선 안 된다. 취업과 결혼을 포기한 채 절망과 우울에 빠져 있는 청년들에게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줄 의무가 있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