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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결혼은 처벌인가

입력
2019.06.1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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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여배우와 사랑에 빠져 사실상 부부로 살고 있는 영화감독이 이혼 청구를 냈다. 법원은 기각했다. 결혼 파탄의 책임이 감독에게 있으니 계속 그 전 배우자와 부부로 살라는 것이다. 책임의 대가가 결혼의 계속이다.

해괴한 논리다. 살던 건물에서 내 실수로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이 홀랑 타버렸다 치자. 적절히 보상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그 잘못의 대가가 평생 그 타버린 건물에서 살아야 된다는 것이라면? 모 재벌 그룹 회장도 공개적으로 혼인관계 종료를 선언했다.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져 아이도 낳았다. 이혼을 요구하지만 거부될 공산이 커 보인다. 모 유명 트롯 가수의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으나 이 가수는 합의를 해주지 않았다. 아내는 무려 5년에 걸친 법정 투쟁 끝에 이혼 판결을 받아냈다. 소송 비용과 시간을 따지면 상처뿐인 승리이다.

판사들은 왜 개인에게 혼인관계를 강요할까? 결혼을 절대시하고 개인보다 가족을 우위에 두기 때문이다. 원래 결혼이란 부부간 서로 몸을 섞을 정도의 고도의 친밀감이 출발점이다. 따라서 친밀감의 기초가 되는 신뢰와 애정이 전혀 없다면 결혼도 해소됨이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전통 가치에 따르면 인간은 결혼해야 온전해진다. 독신자는 예비 신랑, 신부일 뿐. 미혼은 반 쪽짜리 인생이다.

결혼이 이토록 중요한 것은 사회의 핵심을 가족으로 보기 때문이다. 가족은 모든 윤리, 도덕의 기준이다. 가족이 바로 서야 자녀 교육이 제대로 된다. 가족이 화목하면 무슨 일이든 이루지만 불화하면 뭐든 망한다. 가족을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은 회사도, 정부도, 그 어떤 조직도 관리할 수 없다. 세상은 가족의 확대판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고 본다. 혼인건수는 1996년 43만건에서 작년 26만건으로 급감했다. 이혼은 많이 한다. 1997년 이후 연 10만건을 돌파한 이혼 건수는 결혼건수가 급감했음에도 10만 이하로 내려갈 줄을 모른다. 프랑스, 스웨덴 등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는 이미 신생아의 절반 이상이 혼인관계 밖에서 태어난다.

혼인관계는 더는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에 혼인빙자간음죄를 위헌 선언했다. 혼인빙자간음죄란 결혼을 약속하고 성관계를 가진 후 결혼을 안 해주면 상대방의 정조를 파괴한 것이니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성관계도 사후적으로 결혼하면 정숙한 것이 되고, 안 하면 범죄가 된다. 혼인관계 내 성행위만을 정숙한 것으로 보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법률이니 위헌이 날 수밖에. 혼외정사를 형사 처벌하자는 간통죄도 2015년 위헌 결정이 났다. 가족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 가치의 변화가 판결에 반영된 것이다.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혼인과 가족을 신성시하는 시각은 여전히 공고하며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미혼모가 별로 없다. 연간 20만건 이상으로 추산되는 미혼 임산부 낙태 때문이다. 혼인관계 밖의 성관계와 출산을 금기시하는 풍토가 수십만 어린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결혼과 가족을 절대시하는 관점은 더는 유지되기 어렵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중시하고 결혼 이외에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는 문화는 불가피하다. 경제, 기술 발전에 따라 인간들이 서로 결합하여 살아가는 삶의 형태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결혼과 가족 제도 역시 이제 시대의 변화에 맞게 더 유연해져야 한다. 혼인관계의 경직성이 낮을 수록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많이 낳는 유럽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정법원의 판사들이 판례 뒤에 숨어 현실을 외면하기보다는 시대 변화에 발맞춘 현명한 판결을 내리길 기대해 본다. 결혼은 절대 처벌이 될 수 없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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