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0 결승] 한국, U-20 월드컵 사상 첫 준우승
2골 4도움 이강인, 한국 선수 첫 골든볼 쾌거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이 폴란드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결승전 대한민국과 우크라이나의 경기를 보며 응원하고 있다. 뉴스1

“졌어도 이긴 것과 다름 없습니다! 패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16일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결승전 공식 야외 응원이 펼쳐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이날 한국 대표팀은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에서 아쉽게 역전패를 당했지만, 시민들은 쉽사리 관객석을 떠나지 못했다. ‘사투’에 가까웠던 후반전 경기를 마음 졸이며 지켜봤던 관중은 이강인(발렌시아) 선수가 대회 MVP인 ‘골든볼’ 트로피를 품에 안는 순간까지 굳게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시상식이 진행되는 내내 “장하다”, “대견하다”, “멋지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경기 평택시에서 온 한호성(39)씨는 “오늘 경기는 후회 없는 한판 승부였다”며 “‘졌지만 잘 싸웠다’ 수준이 아니라 ‘졌어도 이긴 것과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날 한씨는 경기를 7시간 여 남겨둔 오후 6시쯤 상암에 도착해, 시민 응원단 중 가장 첫번째로 경기장에 입장했다. 그는 “어린 축구 인재들의 훌륭한 활약상을 보니 한국 축구의 미래가 밝은 것 같아 그저 뿌듯하다”며 대표팀을 향한 고마움을 표했다.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이 폴란드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결승전 대한민국과 우크라이나의 경기를 보며 응원하고 있다. 뉴스1

어린 선수들이 행여라도 스스로를 탓하면 어쩌나 우려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 날 직장 동료들과 함께 응원에 참여한 이모(26)씨는 “선수들이 절대 패배로 인해 낙담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이토록 큰 국제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낸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나 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이 이번 대회를 발판 삼아, 성인 무대에서도 훌륭한 선수로 무럭무럭 자라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연인과 함께 이곳을 찾은 박종민(22)씨 또한 “나를 포함한 국민 대부분이 이번 U-20 월드컵을 지켜보며 벅찬 감동을 느꼈을 것”이라며 “선수들뿐 아니라 정정용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까지, 이번 대회를 위해 힘써 준 모든 이들에게 꼭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이 폴란드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결승전 대한민국과 우크라이나의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상암 후끈 달군 응원 열기… 전광판에 이강인 나올 때마다 우레와 같은 환호성

이날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모인 시민들의 응원열기는 경기를 3시간 앞둔 15일 오후 10시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관객석의 절반 이상이 온통 붉은 물결로 물들었다. 토요일 밤인 만큼, 어린 자녀와 함께 동행한 가족 단위 관중들이 눈에 띄었다. 아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김동광(46)씨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열기를 떠올리며 이 자리에 나왔는데, 벌써 그 때 못지 않은 후끈함이 느껴진다”며 “어린 아들에게도 단체 응원의 감동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함께 오게 됐다”고 말했다. 8강전과 4강전을 재방송을 모두 챙겨봤다는 김씨의 아들 김서준(9)군은 “이강인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오후 11시쯤, 응원단 ‘붉은 악마’가 준비한 초대형 태극기가 관중석 위로 떠오르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너도 나도 휴대폰을 꺼내 들고 ‘인증샷’을 찍기 바쁜 한편, 몇몇 관중은 돌연 자리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주위의 시민들은 “맞아, 강인이가, 우리 강인이가 애국가 크게 불러 달랬어”라며 함께 목소리를 보태기도 했다. 꽹과리와 북을 이용해 가락에 박자를 맞추는 이들도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가 출전 선수들의 리스트를 읊기 시작하자, 관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오세훈 선수와 이강인 선수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엔 우레와 같은 함성이 사방에서 밀려왔다.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이 폴란드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결승전 대한민국과 우크라이나의 경기를 보며 응원하고 있다. 뉴스1

경기를 앞둔 시민들의 표정은 기대감과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전반전이 시작되기 직전 관중석에 만난 이동규(26)씨는 “2002년 당시 부모님을 따라 광화문 광장을 찾았던 경험을 잊을 수가 없었다”며 “오늘 이 곳을 찾으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라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이씨와 함께 경기장을 찾은 동갑내기 친구 이희재(26)씨는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무려 세종시에서 오후 5시부터 출발해 상경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우리 대표팀이 ‘2:0’ 정도로 우크라이나를 가볍게 꺾어버리고 우승컵을 거머쥐었으면 좋겠다”며 한껏 부푼 기대감을 드러냈다.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이 폴란드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결승전 대한민국과 우크라이나의 경기를 보며 응원하고 있다. 뉴스1
◇모두가 기립해 애국가 제창… 첫골 터지자 함성으로 경기장 전체가 ‘흔들’

화면 속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 애국가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관중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앉은 자리에서 모두 일어났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목청을 높였다. 누군가 ‘애국가를 작게 부르면 안 된다’ 일갈이라도 한 듯, 한 소절 한 소절 힘을 주어 불렀다. 1절이 끝나자 관객석에 군데군데에서 2절까지 튀어나오기도 했다.

전반전 4분만에 선제골이 터지며 경기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정점에 달했다.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발을 구르며 함성을 지르는 통에 경기장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쿵쿵 울렸다. 경기를 지켜보던 시민 중 한 명은 “슈퍼스타의 탄생을 눈 앞에서 목도한 기분”이라며 “이강인 선수에게서 손흥민 선수와 같은 힘이 느껴진다”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전반전 33분에 끝내 동점골을 내줬을 때도, 관중은 실망하는 대신 있는 힘껏 박수를 보냈다. 경기를 지켜보던 안모(19)씨는 “기세가 좀 꺾이긴 했어도, 후반전부터는 원점에서 시작하면 되지 않겠나”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안씨와 함께 경기장을 찾은 대학생 김모(23)씨는 “경기장 분위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뜨겁다”며 “이곳의 갈채가 폴란드 현지에 있는 선수들에게까지 닿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이 폴란드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결승전 대한민국과 우크라이나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뉴스1
◇죽을 힘 다해 슈팅 또 슈팅…. 후반전 끝나니 두 손에 땀 흠뻑

후반전은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10분만에 우크라이나의 두번째 골이 터지며 관중석은 돌연 조용해졌다.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보란 듯이 “대~한민국”구호가 터져 나왔다. 경기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우크라이나에 대항해 한국 응원단도 ‘끝까지 맞서겠다’는 포고였다.

우리 선수들은 쉴새 없이 공을 향해 달려들며 무수한 ‘잽’을 날렸지만, 우크라이나는 강했다. 관중들은 함께 온 일행의 손을 꼭 붙잡거나, 자신의 두 손을 초조하게 마주 잡은 상태로 전광판을 불안히 응시했다. 결국 우크라이나에게 두 골을 더 내주며 스코어는 3:1이 됐지만, 선수들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듯 사력을 다해 뛰었다. 관중들 또한 ‘지든 이기든 끝까지 지켜보겠다’며 연장전까지 자리를 지켰다.

경기를 끝까지 시청하고도 여운 때문인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 이모(22)씨는 “후반전에 안쓰러울 정도로 미친듯이 뛰었던 오세훈 선수가 자꾸 눈에 밟힌다”며 “선수들이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짜내 고군분투한 것이 느껴져서 짠하다 못해 가슴이 찡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 날 정정용 감독이 이끈 태극전사들은 우크라이나에 3:1로 역전패했지만, 한국 남자축구 사상 첫 FIFA 주관 대회 결승 진출에 이어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차지하는 새로운 역사를 쓰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날 대회에 참석한 조모(50)씨는 “1983년 당시 멕시코에서 열린 U-20 월드컵 4강전을 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단체 시청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며 “36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 우리 대표팀이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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