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증상 이해가 치료의 첫걸음 
 [대한조현병학회ㆍ한국일보 공동 기획] ‘조현병 바로 알기’ ⑤이중선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현병 환자들은 남이 자신을 해친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면서 남을 공격하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죄를 지었으니 죽어야 해”, “더러운 것”, “빨리 나가”. 조현병 증상이 심할 때 환자들이 흔히 듣는 환청이다.

조현병은 뇌기능 이상 때문에 생기므로 환자는 외부의 자극 없이 감각을 느끼는 환각 현상을 흔히 경험하게 된다. 환시(幻視) 환촉(幻觸) 환미(幻味) 환취(幻臭) 등 모든 감각에서 나타날 수 있지만, 실제 환자들이 겪는 환각은 대부분 환청(幻聽)이다.

환자들은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다. 의미 없는 잡음이나 동물 소리일 때도 있지만 사람 목소리일 때가 가장 흔하다.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들린다. 환자의 행동을 일일이 평가하는 내용이거나 뭔가 지시하는 내용이 많다.

자신의 병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환청 내용을 그대로 믿으니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소리에 반응해 위험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뛰어내려!”라는 환청을 듣고 이를 실행해 골절상을 입은 환자가 대표적인 예다. 누가 봐도 이상한 행동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들은 소리에 대한 반응이었을 뿐이다. 생생히 들려 믿게 돼 그대로 행동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자꾸 저를 쳐다보고 비웃어요”, “감시하고 미행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내 생각이 밖으로 빠져 나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요”. 조현병 환자가 진료실에서 표현하는 피해망상이나 관계망상의 증상이다. 남이 자기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과 주위 일을 아무 근거 없이 자신과 관계 있다고 믿는 관계망상은 조현병의 아주 흔한 증상이다.

망상이 심해지면 가족을 의심하기도 한다. “부모가 음식에 독을 탔어요.” 집밥을 먹지 않고 편의점에서 포장된 음식만 사 먹던 환자의 말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주변 사람이 모두 자신을 해치려는 적이니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최근 일련의 사건처럼 어떤 환자는 피해망상으로 남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런 사례는 아주 드물고 대다수 환자는 피해망상으로 다른 사람을 경계해 외출을 꺼려 고립된다.

망상이 환자를 괴롭게만 하는 건 아니다. 망상 때문에 즐거워하기도 한다. 과대망상이 대표적이다. “내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딸이에요. 지금 부모는 가짜라구요. 지금은 병원에 있지만 미국 국무부 장관이 날 모시러 올 거예요.” 이러면서 즐겁게 생활하는 환자도 있다.

조현병으로 인한 환청과 망상은 뇌기능장애 탓이다. 기타나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 줄은 너무 세거나 느슨하게 당기면 안 된다. 적절한 긴장도로 줄을 당겨야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뇌에도 현악기 줄처럼 뇌기능회로가 있다. 이 회로 활성이 과하거나 결핍되면 문제다. 회로 활성이 적절히 조율되지 않으면 환청이나 망상이 생긴다. 그래서 병 이름도 ‘줄〔絃〕을 적절히 조절한다〔調〕’는 뜻에서 조현병(調絃病)이다.

환청이나 망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현병으로 섣불리 예단해서는 안 된다. 다른 여러 뇌신경계질환, 조울증, 우울증,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등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원인·경과·치료가 조현병과 모두 다르기에 정확한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뇌파검사, 혈액검사, 정밀심리검사, 인지기능검사 등을 한다. 그러나 조현병은 다른 뇌질환처럼 이들 검사만으로 진단하지 않는다. 증상 특성과 임상경과를 정확히 파악해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지 알아내는 전문적인 판단이 필수적이다. 숙련된 정신건강의학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다.

조현병으로 진단되면 약물치료가 필수다. 조현병이 뇌기능장애로 인해 발병하기에 약물 치료는 너무나 당연하다. 조현병은 환청과 망상 외에도 많은 증상이 환자를 괴롭힌다. 감정둔마(dullness of emotion), 무언증, 무의욕, 무쾌감증 등이다. 각각 감정표현이 무뎌지고, 말이 없어지고, 무얼 하려는 의욕이 사라지고, 뭘 해도 즐겁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이들 증상은 행동을 위축시키기에 ‘음성 증상’이라고 한다. 환청이나 망상처럼 행동을 유발하는 ‘양성 증상’과 대비된다. 과거 조현병 치료제들은 양성 증상에는 효과가 있는 반면 음성 증상에는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약물치료로 환청이나 망상은 호전됐지만 음성 증상이 남아 환자가 위축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음성 증상에도 효과를 나타내는 치료제가 개발돼 치료 환경이 훨씬 나아졌다.

그러나 아직 양성 증상 치료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기에 음성 증상까지 확실히 개선해 사회인으로 온전히 생활할 수 있게 하는 일은 전문가들의 몫이다. 현재 여건으로는 적절한 정신재활치료를 제공하는 기관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의료기관의 ‘낮 병원’, 정부가 운영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 사회복지기관에서 운영하는 ‘정신재활센터’ 등이 환자의 사회 복귀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중선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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