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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美에 화웨이 보안문제 검증해달라 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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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美에 화웨이 보안문제 검증해달라 요구해야”

입력
2019.06.14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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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중갈등 대응’ 전문가 제언] 

 “무역ㆍ안보 갈등 전선별로 분리 대응 필요… 선제적 입장 표명해야 

 기업에 反화웨이 결정 맡기고 美 설득을… 안보 전선엔 한미동맹 지켜야”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막한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인 'CES 아시아 2019'의 화웨이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화웨이 스마트폰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화웨이는 이날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선보이는 대신 종전부터 판매 중인 제품들로만 전시장을 채워 놓았다. 상하이=연합뉴스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막한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인 'CES 아시아 2019'의 화웨이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화웨이 스마트폰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화웨이는 이날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선보이는 대신 종전부터 판매 중인 제품들로만 전시장을 채워 놓았다. 상하이=연합뉴스

세계 양강(兩强)인 미국과 중국이 싸우고 있다. 한국은 난감하다. ‘핵 우산’을 씌워주는 동맹국 미국 편을 드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기업 처지를 감안하면 전체 수출의 4분의 1이 집중된 중국의 눈치를 안 볼 도리도 없다. 선택은 곧 손해다. 정부가 전담반을 꾸릴 정도로 심각하게 여기면서도 겉으론 미중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짐짓 모르는 척하는 이유다.(본보 6월 13일자 8면)

그렇다고 마냥 결정을 미룰 수도 없다. 2년 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가 주한미군에 배치될 당시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다 실기(失期)한 탓에 미국의 보호도 없이 중국으로부터 호되게 보복 당한 쓰린 기억이 있다. 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뭐가 됐든 정부가 적극적 입장 천명을 서둘러야 한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조언이다. 소극적 ‘로키’(low-key) 대응에는 유효 시한(時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3일 본보가 들은 전문가들 제언을 종합하면 갈등 전선(戰線)별로 우리 정부가 다른 방식의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요컨대, 갈등이 경제 분야일 때는 자유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안보 분야라면 동맹이면서 아무래도 아직은 힘에서 우위인 미국이라는 ‘세력’을 운신의 기준으로 삼는 게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다.

현재 미중 양국 정부는 중국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 제재 여부를 놓고 일전을 치르고 있다. 정부 사주를 받은 화웨이가 자사 장비를 활용해 동맹ㆍ우방과의 통신망에 유통되는 자국 정보를 빼돌릴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게 미 정부의 설명이다. 실제 미국은 화웨이와 자국 기업 간 거래를 막는 건 물론 다른 나라 기업에게까지 화웨이 제재에 동참할 것을 압박 중이다. 중국은 중국대로 부품 공급이든 장비 수입이든 화웨이와 거래를 끊을 경우 불이익에 노출될 수 있다며 경고를 하고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미 정부 요구의 표면적 이유는 보안 관련 우려지만 시장이 헤아리는 미측의 속내는 다르다. 화웨이는 ‘5G’(차세대 이동통신) 표준 선점 각축에서 세계 최선두권에 있는 업체다. 결국 기술 패권 다툼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국가 안보 강화를 핑계로 경쟁 상대인 중국 기업을 죽이려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때문에 적어도 화웨이 제재에 관한 한 미측 요구 수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아직 화웨이 장비의 보안 문제점이 증명되지 않은 터에 섣불리 정부가 시장에 개입했다가 추가 개입의 빌미만 제공할 수 있는 만큼 당분간 다른 나라와의 공동 대응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개별 기업한테 결정을 맡기는 게 최선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정부 역할은 간섭이 아니라 대응 원칙을 설정한 뒤 미국을 설득하는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 주문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무역주의는 미국이 세계에 확산시킨 보편 가치이기 때문에 이 원칙을 고수할 경우 명분 면에서 미국이 문제 삼기 어려울 것”이라며 “자국이 국가자본주의라고 비판한 중국처럼 정부가 기업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모양새가 되면 미국이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안보 분쟁의 경우 진영이나 힘의 논리를 도외시하기 힘들다는 게 대체적 지적이다. 지금 미국이 우리 정부의 동참과 지지를 요구하고 있는 현안은 중국의 신(新)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맞서 미국이 추진 중인 ‘인도ㆍ태평양’ 전략과,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 작전 등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미국의 전략적 목표를 거부하는 입장에 자꾸 서다가는 미국 주도 질서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최재덕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정치외교연구소장은 “중국의 경제 보복을 두려워하다 한미 동맹이라는 더 큰 가치를 잃을 우려가 있다”고 했다.

화웨이 건의 경우 보안 우려가 증명되느냐가 국면 전환의 관건이다. 국책연구기관 소속 전문가는 “화웨이 보안 문제가 사실임을 밑받침하는 명확한 증거가 나온다면 자유시장 이상의 국가 안보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 요구대로 제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부가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입장 표명 타이밍도 중요하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사드 사태의 교훈은 원칙 없이 모호성을 길게 가져가다 미중 모두 설득하지 못한 채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라며 “국가 차원의 대(大)전략 수립이 시급하다”고 정부에 당부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가급적 힘에 의존하지 않도록 국제 규범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긴요하다는 충고도 나온다.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대외 의존적 체제 속성 탓에 미중의 일방주의 횡포에 특별히 노출된 한국과 일본이 인도ㆍ태평양 전략과 일대일로가 공생할 수 있도록 국제 규범의 제정을 위한 협력 외교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한편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화웨이 제품의 보안 우려와 관련해 “정부는 기업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군사 통신보안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안을 강구하고자 한다”며 “이를 위해 관련 부처 간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고, 필요한 경우 관련국과도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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