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골디락스란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소녀는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오두막을 발견했다. 아무도 없는 오두막집엔 죽 세 그릇이 덜렁 있었다. 소녀는 세 그릇의 죽 중에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죽을 먹었다. 그런 뒤 오두막에 있던 세 개의 침대 가운데 딱딱하지도, 푹신하지도 않은 적당히 부드러운 침대에 누웠다.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란 이야기의 일부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생명체가 살기 적합한 행성을 ‘골디락스 행성’이라 부른다. 태양계에선 지구가 골디락스 행성이다.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려면 열을 내는 항성(태양계에선 태양)으로부터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행성의 기온이 알맞게 유지된다. 물도 액체 상태로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과학계에선 항성의 크기와 온도, 항성과 행성 간의 거리 등으로 골디락스 영역을 따져왔다.
인류가 지금껏 발견한 태양계 밖 지구형 행성들 중 생명체 존재 가능성이 높은 것들은 하나 같이 골디락스 영역에 속해 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가 꼽은 2016년 연구성과 10선 가운데 2위에 오른 지구형 행성 ‘프록시마 b’도 마찬가지다. 발견 당시 “현재까지 발견된 ‘제2의 지구’ 후보 중 지구와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행성은 태양계에서 불과 4광년 거리에 있는 항성 ‘프록시마 켄타우리’ 주위를 11.2일을 주기로 돈다. 크기는 지구의 1.3배.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온도 등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2017년 미국항공우주국(NASA)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진은 지구에서 39광년 떨어진 곳에서 지구형 행성 7개를 무더기로 발견했다. 태양과 같은 항성인 ‘트라피스트-1’을 공전하는 b, c, d, e, f, g, h 행성의 표면 온도가 섭씨 0~100도에 해당할 것으로 분석된 것이다. 지구와 비슷한 크기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항성과도 적당한 거리여서 물과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7개 행성 중 e, f, g 행성에서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프록시마 b뿐만 아니라, 트라피스트-1 주변을 도는 e, f, g 행성에서도 다세포 생물이 살긴 어려울 거란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와 NASA, 시카고대, 컬럼비아대 등의 공동연구진은 지난 10일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The Astrophysical Journal)’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이산화탄소나 일산화탄소 농도 등 다른 변수를 적용할 경우 기존 골디락스 영역의 크기가 70% 이상 감소한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이들은 대기의 기후와 광화학 반응을 살펴볼 수 있는 컴퓨터 모델을 만든 뒤 ‘서식 가능 지역(habitable zone)’이라 불리는 골디락스 영역을 분석했다. 광화학 반응은 빛에 의해 물감이 퇴색되는 것처럼 빛에 의해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말한다. 이때 우선 고려한 게 이산화탄소 농도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행성이 적정한 온도를 갖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서식가능지역 끝부분에 있는 행성은 빛을 적게 받기 때문에 적절한 기온을 유지하려면 지구보다 수만 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00ppm 남짓이다. 1만 배만 높다고 해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인류가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미국산업안전보건청(OSHA)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5,000ppm으로 보고 있다. 다른 다세포 동물도 마찬가지다. 오징어는 이산화탄소 농도 6,700ppm부터, 딱딱한 골격을 갖고 있는 경골어류는 3만ppm부터 악영향을 받는다. 이들은 “이산화탄소 수준을 고려하면 현재 알려진 서식가능지역 면적 중 인간 등 다세포 동물이 살 수 있는 곳은 전체의 30% 이하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비교적 간단한 동물이 존재할 수 있는 면적은 이보다 큰 전체의 50% 남짓으로 추산됐다.
연구진은 트라피스트-1 주위를 도는 f와 g행성의 경우 이산화탄소 농도가 매우 높아 생명체가 살기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트라피스트-1을 공전하는 e행성과 프록시마 b는 대기 중 일산화탄소 양이 많아 생명체가 존재하기 어렵다고 봤다. 일산화탄소는 혈액 속 헤모글로빈에 달라붙어 세포에 산소가 전달되는 것을 막는다. 소량만으로도 매우 치명적이지만 지구에선 태양의 자외선에 의해 파괴되기 때문에 위해를 끼칠 농도(25ppmㆍOSHA 기준)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연구진은 “다른 지구형 행성들이 도는 항성은 태양처럼 밝지 않아 충분한 자외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제2의 지구가 될 후보를 추릴 때 이런 방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구가 얼마나 특별한 행성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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