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홍콩 입법회(의회) 건물 주변에서 경찰이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해 최루가스를 발포하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범죄인 인도 법안을 저지하려는 홍콩 시위가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으로 번져 격화되고 있다.

무역전쟁과 대만을 둘러싼 군사적 갈등에 이어 홍콩으로 전선이 넓어지면서 미국은 중국을 압박할 카드를 추가로 확보했다. 반면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국가 두 체제)를 표방하며 홍콩과 특수관계인 중국은 결사 항전으로 수성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런 가운데 홍콩 시위대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여론에 지지를 호소하고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다급한 상황을 해외로 알리고 있으며, 중국의 묵시적 지원을 등에 업은 홍콩 정부는 초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안팎으로 복잡하게 꼬이면서 홍콩 시위 사태는 장기전으로 흐를 조짐이다.

12일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입법회 주변 등 홍콩 도심을 점거한 대규모 시위로 시민 70여명이 다쳤다. 이 중 수백 명은 13일까지도 산발적으로 시위를 계속했다. 홍콩 입법회(우리의 국회)가 법안 심의를 연기하면서 파국은 피했지만, 전날의 물리적 충돌을 놓고 홍콩 정부와 시위대는 서로 상대방을 ‘살인자’로 몰아세우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13일 명보를 비롯한 홍콩 언론에 따르면, 정부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노골적으로 조직화된 폭동”이라며 “치명적인 수단을 동원해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고 규정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불을 지르고 쇠꼬챙이, 벽돌을 던졌다”면서 “생명에 위험을 느껴 부득이하게 고무탄을 사용해 맞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시위대는 “경찰이 살상 무기로 시민들을 진압했다”며 “법안을 철회할 때까지 절대 해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새 법안은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중국 등으로 범죄인을 송환할 수 있도록 허용해,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는 정치범이나 인권운동가 탄압의 빌미로 작용할 것이라며 극구 반대하고 있다.

이처럼 양측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팽팽하게 대치하는 사이, 장외에서는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간 잠자코 지켜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홍콩과 중국이 잘 해결하길 바란다”며 “100만명이 시위를 했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큰 시위였다”고 입을 열었다. 지난 9일 103만명이 운집한 홍콩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를 언급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 시위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중국 정부에 전달하려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시위 이유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을 자극하는 거친 언사는 삼갔지만, 시위대에 심적으로 동조한다는 의미여서 언제든 독설로 바뀔 수 있는 사전 경고의 메시지로 읽힌다.

미 국무부는 성명을 통해 “홍콩 정부는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으로 모일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거들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법안이 통과된다면 홍콩의 일국양제와 고도의 자치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재평가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홍콩 정부가 평화로운 시위자들에게 극도의 충격을 받았다”며 시위대를 전폭 지지했다. 더불어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도 홍콩 시민들을 두둔하는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독일 외무부는 “홍콩 당국에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히는가 하면 12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범죄인 인도 법안의 영향을 걱정했다.

미국에 이어 주요국들이 홍콩 시민들의 편에 서자 중국은 시위대를 ‘폭동’으로 규정하면서 경찰의 강경 진압을 정당화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모양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캐리 람 행정장관의 말을 인용해 “홍콩에서 발생한 상황은 평화집회가 아니라 조직적인 폭동으로 어떤 문명 법치 사회도 평화와 안녕을 해치는 위법행위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겅 대변인은 이어 미국 등을 향해 “홍콩의 일은 중국의 내정”이라며 “간섭 말라”고 발끈했다. 관영 환구시보도 이날 사설에서 “홍콩의 급진 반대파는 정치적 사익을 위해 중국을 적대시하는 외부세력과 한통속이 됐다”고 주장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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