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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얼마나 고기구이를 좋아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소가 있다. 황학동의 중고 주방기구 골목 내 불판 전문 가게다. 패총처럼 쌓인 중고 불판을 헤집다 보면 조선시대의 불판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조선시대는 문자 그대로 불고기에 목숨을 걸었던 역사를 갖고 있다. 조정에서는 금우도감을 설치해 일종의 ‘경운기’ 노릇을 했던 소를 함부로 잡지 못하게 관리했다. 밀도살하다 걸리면 중형을 내리기도 했다. 그래도 불고기의 유혹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소고기 먹는 풍습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그 시절의 불판은 포졸의 모자를 닮아 전립투, 즉 벙거지처럼 생겼다. 성연이나 김홍도가 그렸던 조선 후기의 그림에 나오는 불판이 그것인데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다. 뒤집어진 벙거지 모양의 불판 가운데 양념을 채우고 모자챙에 해당하는 쪽에다가 고기 굽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글거리는 숯불이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그때 양념은 간장, 기름, 파 등이었다. 이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불고기의 기본 양념이다. 불고기는 70년대 이후 대 혁신의 시기를 맞는데, 그때 나타난 것이 새로운 불판이었다. 석쇠나 전립투 방식 대신 우리가 알고 있는 구멍 뚫린 노란색 금속 불판의 등장이었다. 이는 즉석 불고기가 생겨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야외가 아니고서는 불고기는 대개 주방에서 구워 손님상에 내는 방식이 흔했다. 불고기 외식업의 원조격인 ‘한일관’ 옛 직원들의 증언도 대개 일치한다. 그러다가 이 멋진 불판이 나오고, 손님이 즉석으로 불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여담이지만, 놀랍게도 이런 불판에는 대개 특허가 붙어 있다.

80년대 들어 외식업은 생구이 시대로 진화했다. 삼겹살의 대유행도 이때부터다. 양념하지 않은 생등심과 삼겹살이 대세가 된 것은 월급쟁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상징물이었다. ‘월화수목금토토’ 일하는 회사 인간의 등장은 격무와 회식으로 이어졌다. 지금처럼 주 5일 근무가 없었고, 토요일도 평일처럼 일했다. ‘와이셔츠 부대’들은 일이 끝나면 우르르 고깃집으로 몰려가 소주에 소든 돼지든 생고기를 구우며 ‘산업 전사’의 노고를 스스로 위로했다.

그렇다면 왜 양념구이에서 생고기로의 극적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농가에서 잔반 등으로 기르던 시대를 지나 규격 사료를 먹여 대량 출하하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다시 말해 고기마다 고른 품질을 보이고 규격 사료를 먹는 고기는 잡냄새가 나지 않아 (양념하지 않고도) 생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를 테면, 잔반을 먹이는 돼지고기는 생고기 구이를 했을 때 맛이 떨어진다. 한국인은 생선과 젓갈 등을 즐겨 먹어서 그 ‘비린내’가 고기에 밴다는 뜻이다.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한국은 잔반, 즉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든다. 잔반 사육이 소각이나 매립 등을 피할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문제도 발생한다. 사람이 먹다 남은 고기, 심지어 ‘동족의 고기 잔류물’을 해당 짐승에게 먹여도 되냐는 윤리적 고민이 제기됐다(잔반에서 해당 육류만 걸러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심각한 위험에 처한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잔반으로 전염될 확률이 높다는 것도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정부가 이런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일관된 계획을 갖고 있는지, 민간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지 묻고 싶다. 어쨌든 우리는 고기를 구울 것이고, 잔반은 남을 것이며, 음식 쓰레기를 안전하고 청결하게 처리할 방법은 별로 없다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다. 불판은 쾌락을 주지만, 뒷감당도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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