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민주화 요구에 나선 시민들을 유혈 진압해 지난주에만 100여 명이 숨진 아프리카 북동부 수단에서 어렵사리 민정 이양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 온 야권 연대가 불복종 시위를 끝내고 군부와 협상을 재개하기로 하면서다. 30년 독재자가 쫓겨난 자리에 군부 정권이 들어섰으나, 시민들의 거센 민주화 열망과 국제 사회의 중재에 힘입어 수단이 ‘제2의 아랍의 봄’을 맞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수단 군부와 야권의 중재를 위해 수도 하르툼을 찾은 마흐무드 디리르 에티오피아 특사는 11일(현지시간) “양측이 과거에 한 모든 협상이 복원됐다”면서 “조만간 재개될 새 협상은 논란이 된 ‘주권위원회’ 구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주권위원회’는 양측이 지난달 민간정부로의 권력 이양 전 설치하기로 합의한 과도 통치 기구로, 그간 야권과 군부는 서로 과반 의석을 달라고 요구하며 주도권 싸움을 벌여왔다.
디리르 특사는 이어 “(야권 연대인) ‘자유ㆍ변화를 위한 선언의 힘’(DFCF)은 이날부로 시민 불복종운동을 종료하는 데 동의”했으며 “(군부인) 과도군사위원회(TMC)도 정치범 석방에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반정부 시위의 주축이 되어 온 DFCF는 지난 3일 TMC가 민정 이양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해 유혈 진압을 벌이자, 9일 대규모 시민 불복종 운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수단 의사협회에 따르면 3일 이후로도 진압이 계속돼 현재까지 118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수단은 지난해 12월부터 정치적 혼돈에 휩싸여왔다. 정부의 빵값 3배 인상에 항의하며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1989년부터 철권통치를 해 온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의 퇴진 운동으로 확대됐다. 수개월 시위 끝에 지난 4월 11일 수단 군부는 바시르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으나, 직후 군부가 직접 통치를 선포하면서 시민들의 반발이 쏟아졌다.
이후 군부와 야권의 지난한 협상과 합의 파기, 시위와 유혈 진압 등 우여곡절이 반복된 끝에 인접국 에티오피아의 중재로 양측은 조만간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됐다. 미 국무부도 이번 주 중 특사를 보내 양측 지도부를 만나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할 예정이다. 다만 중동 매체 알자지라는 양측이 협상을 재개하더라도 주권위원회 주도권을 어느 쪽이 가져갈 것인지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도 지난 2010년 아랍의 봄 때 보다는 민주화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광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HK교수는 “과거처럼 (민중봉기 이후에) 군부 독재나 쿠데타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장기 독재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수단 국민의 저항과 열망이 강하고, (군부에 민간 이양을 압박하고 있는) 아프리카연합(AU)의 영향력도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설명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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