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구술사가인 이탈리아 알렉산드로 포르텔리 교수 인터뷰 
이탈리아의 세계적 구술사가인 알렉산드로 포르텔리 교수를 지난 3일 서울 중앙대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박제된 기록보다 살아 있는 기억이 더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기록은 힘 있는 자들의 것이다. 역사는 기층 민중의 이야기를 제대로 조명하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 구술사(口述史)의 역할이다. 구술사를 쓴다는 것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 혹은 주류에 의해 침묵을 강요당해서 버려지거나 사라진 기억을 역사 담론의 장으로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한국에선 1980년대 구술사 연구가 본격화한 덕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와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제주 4ㆍ3 항쟁 같은 과거사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알렉산드로 포르텔리(77) 이탈리아 로마 라 사피엔자대 교수는 세계적 구술사가다. 그는 노동자 계층의 말과 노래에서 터져 나오는 진실의 힘을 믿었다. 1940년대 이탈리아 공권력에 의한 노동자 사망 사건, 독일 나치군의 학살 등을 구술사 연구로 재조명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묻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과거의 사건이 지금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를 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내러티브 연구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한국구술사학회 창립 10주년을 맞아 중앙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석 차 방한한 포르텔리 교수를 만났다.

 -구술사 연구에선 ‘사실 그 자체’보다 ‘해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슨 의미인가. 

“1930년 구술사 연구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구술은 역사 기록의 빈틈을 채워주는 보완재로 인식됐다. 구술하는 사람의 기억은 늘 역사 기록과 비교됐다. 기록된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면 기억의 오류라고 단정하고 폐기해 버렸다. 기억을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진실과 멀어지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왜 다르게 기억하는지를 알아내야 진실의 퍼즐을 맞춰 나갈 수 있다. 1910년 미국 앨라배마주 농장 노동자로 혹사당한 90세의 흑인여성을 1990년대에 인터뷰했는데, 그는 2시간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80년의 세월이 흐르고도 백인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기억은 사건 자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세계적 구술사가인 알렉산드로 포르텔리 교수가 지난 3일 서울 중앙대 근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박제된 기록보다 살아 있는 기억이 더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은 기억은 불완전하다고 배척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일본 정부가 폄하하는 논리다. 

“기억은 대부분 사실과 근접하다. 그런데도 기억을 못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연도나 지명 같은 사소한 오류를 문제 삼는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기억이 아닌 문헌이나 사료는 과연 100% 믿을 수 있는 것이냐고 말이다. 기록 역시 당대의 정치 상황과 개인의 자의적 해석이 곁들여진 결과물이다. 동유럽의 구술사 연구자들은 “부르주아 관점에서 작성된 과거 기록은 신뢰할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기도 했다. 독일 나치 시대나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 작성된 경찰 보고서는 누가 기록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반면 구술은 한 개인의 경험 그 자체다. 누가 말했는지 화자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더 신뢰할 수 있다.”

-한국에선 5ㆍ18 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공인된 역사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수십 년째 벌어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현 체제는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에 대항하면서 출범했다. ‘반파시스트’는 건국 이념이고 공식 역사다. 그런데도 25년째 집권하고 있는 우익 정권은 반파시스트 운동을 이끈 좌파 성향의 저항군을 끊임없이 흠집 내는 등 역사 흔들기를 멈추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발언에 대중매체의 보도가 합세해 ‘저항 서사’의 신뢰성을 떨어트리고 있다. 잠깐 들여다 봐도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지 알 수 있지만, 비공식 서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진다. 정공법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역사 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공식 서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결국 기억은 장기전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경험한 사건의 당사자들은 세월과 함께 사라진다. 

“당사자는 사라질지 모르지만 기억은 세대를 통해 계승된다. 남은 자들이 할 일은 생존자들을 만나고 역사를 겪은 사람들을 찾아내 ‘기억에 대한 기억’을 발굴해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선 나치 시절을 겪은 생존자들의 손자, 손녀를 인터뷰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조부모들, 그들로 인해 힘들어한 부모들을 지켜 본 3세대에도 기억과 상처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사실’을 캐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왜 우리가 지금까지 그 사건을 묻고 있는지’ ‘누가 그 기억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지’에 대해 더 풍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털고 미래로 가자는 사람들도 있다. 

“기억은 숨쉬는 것과 같다. 내가 숨을 쉴지 말지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기억을 할지 말지도 선택할 수 없다. 아픈 기억을 잊으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기억은 선별할 수 없다.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면 숨을 조금 더 잘 쉴 수 있는 것처럼 기억을 더 잘 기억하는 방법도 있다.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50년 뒤에 2019년의 기억을 묻는다고 치자. 별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살았다면 기억할 게 없을 것이다. 반면 나와 가족,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참여한다면, 훗날 당신의 기억은 훨씬 더욱 풍부하고 생생해질 것이다. 기억은 과거에 대한 지속적인 재해석이다. 오래도록 기억하거나 기억되고 싶다면 현재의 세계를 외면하지 말라.”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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