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의 맹세'에 'Under God'란 구절이 삽입된 뒤인 1957년 미국 뉴욕의 한 공립학교 학생들이 충성의 맹세를 하는 장면. AP 연합뉴스

한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는 1968년 충남교육위원회가 먼저 시작해 72년 당시 문교부에 의해 전국으로 확대 시행됐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개정한 현행 ‘…맹세’는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하는 건 이전과 같지만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는 대신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충성한다”고 맹세한다. “몸과 마음을 바쳐”라는 구절이 일본 군국주의의 흔적이라는 지적이 있었고, 조국과 민족을 떠받든다는 건 전체주의의 혐의를 살 만했다.

하지만 국기에 대한 충성의 맹세 자체를 군국주의나 전체주의의 잔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근대 국민국가가 성립된 뒤 그 유지를 위해 고안된 국기나 국가(國歌), 그 밖의 다양한 감각적 상징물들처럼, 상징 조작의 여러 방편 중 하나일 뿐이다. 미국의 경우 ‘충성의 맹세(Pledge of Allegiance)’라는 게 있다. 내전 중 북군의 한 장교가 사기 진작을 위해 시작했다가 전후 뉴욕의 교사가 돼 그 맹세를 활용했다고 한다. 지금 형태의 맹세는 1892년 기독교 사회주의자인 침례교 목사가 만들었고, 1942년 미 의회가 채택해 45년 ‘충성의 맹세’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했다. 전후 냉전 초기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 국기의 날인 1954년 6월 14일, ‘…맹세’의 구절 안에 ‘Under God’라는 논란이 될 만한 구절을 삽입하는 국기 법령(Flag Code) 개정안에 서명했다. 이후 미국인은 “신의 뜻에 따라” “자유와 정의로 모두가 하나인, 결코 갈라질 수 없는 공화국을 위해 충성을 맹세”한다.

저 문구가 종교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의 취지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건 예가 더러 있었다. 2002년 캘리포니아 연방 제9항소법원은 위헌 판결을 하기도 했다. 2년 뒤 연방대법원은 원고의 기소자격을 문제 삼아 소 자체를 무효화했지만, 다수 판사들은 위헌이 아니라는 별도 의견을 내기도 했다. 2010년 보스턴 제1항소법원은 저 문구의 목적이 충성 서약이며 낭송이 전적으로 자율적인 것임을 들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서약이 국민국가의 상징조작이라면 그 서약에 대한 의심과 도전은 근대의 주요 증표인 시민사회와 입헌(민주)주의의 증거일 것이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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