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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대학 교수에게 들은 얘기.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면 전에는 한국어로 된 자료만 참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영문 자료들도 많이 찾아본다고 한다. 이전보다 영어 실력이 향상되어서가 아니라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번역 기능을 이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질의 해외 자료들을 많이 접하게 되어 학생들의 전공 분야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시야도 넓어져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현상적인 기술이 많아서 비교적 번역이 용이한 이공계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계열의 학술 자료들도 점점 더 인공지능 번역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들, 비유나 상징, 암시와 문맥 등 인간의 철학과 글쓰기 역사에서 구사된 모든 레토릭들도 결국은 인공지능의 기본기가 될 날이 올 것이다. 활자매체로 존재하는 모든 텍스트들을 디지털 형태로 변환하고 그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에게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시키는 이런 과정이 쌓이다 보면 인공지능이 교사나 멘토 역할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이런 시나리오, 즉 인공지능의 압도적인 지적 연산 능력을 다루어왔던 SF들 상당수는 결국 인공지능이 인류를 초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알파고처럼 특정 분야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은 속속 등장할 것이다. 그렇다고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와 같이 인류를 말살할 것이라는 설정은 공포나 스릴을 파는 문화 콘텐츠로서는 흥미롭지만 현실적인 설득력은 약하다. 그보다는 댄 시먼스의 소설 ‘히페리온’처럼 인공지능이 그들만의 독자적인 지적 문명을 이루어 우주 안에서 인류와 대등한 존재로 교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이건 아주 먼 미래의 가능성이지만.

이와 관련해서 유념할 만한 관점이 있다. 인공지능과 인류가 서로 상대방을 닮아간다는 이론이다. 인공지능이 벤치마킹 대상인 인간에 가까워지는 만큼 인간도 인공지능과 비슷한 존재로 변해간다. 이것이야말로 현생 인류의 생물학적 미래, 즉 트랜스휴먼을 거쳐 포스트휴먼의 단계로 나아가는 전망을 암시하고 있다. 이 전망은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여 사이보그가 된다는 물리적 측면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치관이나 철학이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공지능처럼 변해간다는 건 어떤 면일까?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는 수학이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결과를 추구한다. 반면 인간은 근사치가 허용되며 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나 정서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이걸 두고 흔히 ‘인간적이다’라고 표현하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그릇된 부조리일 뿐이다. 인류의 역사는 부조리에 대항하여 정의를 구현하려는 다수 대중의 투쟁이기도 했으며,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정의와 합리성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사회 체제가 변화해 왔다. 이런 노력의 화룡점정은 바로 인공지능적 사고방식, 즉 다양성에 대한 공평함이라는 입장 그 자체를 수용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이상적인 미덕으로 꼽는 불편부당한 자세야말로 인공지능의 수학적 객관성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아직 불완전하다. 여성이나 성소수자, 인종 등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인간의 시선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으로 연산 능력이 더 발전하고 인문적 빅데이터의 학습이 쌓일수록 인공지능은 스스로 인간보다 더 순수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 즈음이면 인간은 청소년 세대의 교육을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영화 ‘블레이드러너’에 등장하는 모토처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이야말로 인간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실존적 동반자이자 이상적인 멘토의 면모를 갖출 것이기 때문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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