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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 찍힐라” 보충수업 사인 안하는 학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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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 찍힐라” 보충수업 사인 안하는 학부모들

입력
2019.06.07 04:40
수정
2019.06.07 10: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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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기초학력 지원 TF’서 부모 동의 없이도 ‘보충지도 의무화’ 검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인천의 한 초등학교 4학년 담임 교사 김모(40)씨는 학기 초, 기초학력 미달 학생 2명의 학부모에게 보충지도를 위한 동의서를 보냈다가 모두 퇴짜를 맞았다. 학부모들의 사유는 하나였다. ‘공부 못하는 애로 찍힐까 걱정된다’는 것. 김씨는 “학습 결손은 누적되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개입해야 벗어날 수 있는데, 학부모들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개입이 늦어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학부모들이 이처럼 보충지도조차 반기지 않아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도교육청 매뉴얼에는 보충지도를 하려면 학부모의 동의를 받도록 돼 있는데, 학부모들은 자녀가 친구나 교사에게 공부 못하는 애로 찍히는 ‘낙인 효과’를 두려워해 이를 거절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교사들은 이런 학부모들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43)씨는 “동의서가 나가면 대부분 ‘우리 애만 남겨서 공부하냐?’는 질문을 제일 먼저 한다”며 “학교에서 하면 다른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소문이 날까 사교육을 택하는 학부모들도 많다”고 전했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33)씨는 동의서 문구 하나 하나에 신경을 쓴다. 그는 “‘기초학력 미달’ ‘학습부진’ 이런 단어들을 동의서에 적으면 거부감이 커서 요즘에는 ‘기초 탄탄’으로 완곡하게 표현하는데도 내가 맡은 학년(2학년) 10명 중 2명이 거절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초등학교 학생들의 기초학력 진단은 학기 초에 이뤄진다. 학교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충남대 등에서 만든 평가도구를 선택해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걸러내고, 해당 학생 학부모의 동의를 받아 방과 후에 일주일에 1~2시간씩 가르치는 시스템이다. 통상 5~10% 정도가 기초학력 미달로 나온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지난 3월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한 아이도 놓치지 않고 기초학력을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지난 3월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한 아이도 놓치지 않고 기초학력을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내 교육과정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같은 내용을 심화, 반복하는 나선형 체계라 전 단계(학년)에서 학습 부진이 발생했을 때, 이를 보충하지 못하면 학습 부진이 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부모가 정당한 이유 없이 학생의 학습 보충 기회를 뺏는 것은 일종의 교육적 방임과 다름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독일처럼 유급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보충학습마저 거부하면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며 “필요하면 부모 동의 없이도 특별보충과정을 이수하도록 하는 게 의무교육 취지에 맞다”고 강조했다. 교육부가 지난 3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로 진단해 발표한 지난해 기초학력 미달(교육과정 이해도 20% 미만) 학생은 수학의 경우 중학교 3학년이 11.1% 고등학교 2학년이 10.4%로, 10명 중 한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이에 따라 시도교육청, 교원단체 관계자들로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 후속 조치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 대한 보충지도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배동인 교육부 교육기회보장과장은 “현장 요구가 있어 TF에서 논의 중”이라면서도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의 학습권에 제한이 되는 규제적인 접근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한 쪽에선 보충지도를 강제 규정으로 만드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 이모(39)씨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지도하려면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한데 학교가 아직 이런 시스템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학부모 신뢰도 크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이면 오히려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느껴 반발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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