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그리고 사람 이야기] 
 영혼을 파괴당한 코끼리의 트래킹… 발톱·이빨 뽑힌 사자와 사진 찍기 
 여행 중 의도치 않은 학대경험 많아… 목격했을 땐 관련 단체에 알려야 
태국 북부 도시 람팡에서 관광객이 코끼리 트레킹을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슬슬 여름휴가 계획을 세워야 하는 시기다. 몇 년 전 1인출판을 주제로 강연을 하던 중 야생동물을 보러 아프리카로 여행을 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동물 책만 내는 출판사라 던진 질문일 텐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직접 야생동물을 보러 갈 마음이 없다. 그저 그들이 자기의 땅에서 잘 살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생태 관광이 밀렵이나 멸종을 막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의 접근은 어떻게든 야생동물에게 영향을 끼친다. 나는 점점 진화해 정점을 찍고 있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방구석에서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BBC의 ‘플래닛 어스(Planet Earth)’ 시리즈와 매일 각종 채널에서 방송하는 동물 다큐멘터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동물학대 없는 윤리여행을 하려면 

여행 시즌이 되면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는 독자들이 많다. 동물을 위한 여행을 하고 싶은데 추천해줄 수 있는지, 여행사를 통해 갔던 패키지 여행에서 코끼리 트레킹, 동물 쇼 관람, 동물농장 방문 코스가 있어서 불편했는데 어찌하면 좋을지, 특산물이라고 사 온 커피가 동물학대 상품은 아닌지 답을 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동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여행에서 흔히 겪는 딜레마다. 이렇게 되면 여행이 더 이상 즐겁지 않고 마음만 불편해진다. 그렇다면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즐거움 속에서 동물학대를 뺀 윤리적인 여행은 어떻게 가능할까.

지금도 여전히 동남아에서 곰 쓸개즙을 먹는 여행객도 있지만 이런 것은 너무나 극명한 동물학대라서 쉽게 피할 수 있다. 오히려 코끼리 트레킹 등 동물을 타는 것이 동물학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전에 해당 일정이 포함돼 있는지 미처 살펴보지 못했다가 현장에서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가족들과 오랜만에 함께 한 여행인데 한번쯤이야 어때, 하면서 어정쩡하게 동물학대에 일조하게 되는 것이다. 패키지 여행을 떠났다가 동물 쇼를 관람하라고 하는 바람에 여행사 직원과 다투고 불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했다는 지인은 사전에 일정을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동물 서커스ㆍ트레킹 하지 말기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는 공정한 여행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있다. 내용이 대부분 비슷한데 그 중 동물자유연대가 제시한 항목을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동물 쇼나 동물 서커스는 관람하지 말기다. 동물 문제에 있어서는 ‘동물학대 방조자’에서 ‘동물권 옹호자’로 전향한 사람이 많다. 나도 그런 경우다. 이직을 하면서 시간이 나서 처음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미국 여행을 갔을 때 범고래 쇼를 봤다. 국내 돌고래 쇼와 달리 덩치가 큰 범고래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물보라를 맞으며 박수까지 치며 즐거워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덩달아 행복했다. 하지만 범고래 쇼의 진실을 알게 된 후 행복했던 시간은 끔찍한 기억이 됐다. 우리 앞에서 보여준 범고래의 행동이 굶거나 폭력을 당해야 가능함을 그땐 몰랐다. 범고래 쇼를 보며 박수를 치던 나는 범고래ㆍ돌고래 쇼 폐지를 외치는 전향자가 됐다.

공연에 동원돼 비자발적 행동을 강요 받는 돌고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ㆍ전시용 돌고래의 치사율은 야생 돌고래의 2배에 가깝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즘은 동물 쇼의 진실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국내, 특히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로 사랑하는 제주에 동물 쇼가 많아진 건 슬픈 일이다. 동남아에서나 보던 코끼리 쇼를 비롯해서 돌고래 쇼, 멧돼지 쇼까지. 사람들이 동물 쇼의 아픈 진실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제주에 갈 때마다 동물 쇼를 보려고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고개를 떨군다.

두 번째는 동물 트레킹이나 동물 체험 하지 말기다. 휴가 여행지로 동남아를 선택했다면 피해 가기 어려운 코스 중의 하나가 코끼리 트레킹이다. 동물단체의 오랜 노력으로 코끼리가 등에 사람을 태우기 위한 과정에서 무엇을 잃는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코끼리는 길들여지는 과정에서 영혼이 산산이 부서진다. 그럼에도 여행지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코끼리를 탄다. 함께 책 작업을 하는 북 디자이너는 과거에 가족 여행을 가서 코끼리를 타고는 행운을 준다는 코끼리 털도 뽑아온 적이 있다고 고백을 했다. 그런데 우리 출판사와 쇼 동물 책을 만들면서 과거를 부끄러워했다. 그가 많이 보는 패션잡지 속 사진에 모델 옆 소품으로 자주 등장하는 동물들에게 채워진 쇠사슬이, 알고 나니 보인다고 했다. 알아야 변한다. 그런데 알고도 변하지 않는 것은 뭘까. 순간의 즐거움을 위한 욕망일까, 지독한 인간중심주의가 만든 정당화일까.

태국에 갔을 때 사람을 태우고 도로를 걷고 있는 코끼리를 봤다. 코끼리는 땅의 진동을 통해서 멀리 떨어진 동료와도 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동물이다. 그런데 코끼리는 차가 수없이 지나며 만드는 무한대의 진동이 느껴지는 그 곳에 있었다. 내가 저 코끼리라면, 미치겠다 싶었다.

심지어 노동 강도도 세다. 2017년에 캄보디아에서 사람을 태우던 코끼리가 갑자기 쓰러져 죽었는데 사인은 과로였다. 40도가 넘는 무더위에 제대로 쉬거나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고 쉴 틈 없이 사람을 태우다가 죽은 것이다. 야생동물의 과로사.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다. 물론 태국의 코끼리는 가축화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 마음이 편하자고 야생동물에서 가축으로 분류체계를 옮긴 것이다. 동남아에 코끼리가 있다면 이집트 피라미드 관광지에는 말과 낙타,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휴가철이면 사람으로 가득 차는 그리스의 섬 산토리니에는 당나귀가 같은 이유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니 이번 여행에서는 동물의 노동을 착취하지 말고 나의 두발로 정직하게 걷기를.

케냐 마사이 마라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사파리 차량에 탑승한 관광객들이 제자리에 멈춰 선 사자를 바라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야생동물과 사진 찍기도 안돼요’ 

야생동물과 사진 찍지 말기도 기억하자. 며칠 전에는 유럽의 유명 축구선수가 아프리카 여행 도중에 사자와 찍은 사진을 올렸다가 비난을 받았다. 사자는 마치 고양이처럼 사람 옆에 얌전히 앉아 사진 찍기에 응하고 있었다. 인간과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 포식자의 비밀은 뻔하다. 발톱과 이빨이 다 뽑힌 채 약물에 취한 상태. 그러지 않고서야 포식자가 먹잇감 옆에서 입을 벌리지 않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야생동물과의 사진 찍기는 동물 학대이기도 하지만 사고의 위험도 높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요즘 이 같은 ‘인생샷’ 찍기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은 소셜미디어 때문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났을까. 여행업계에서는 2019년 여행 트렌드로 인스타그래머블을 꼽기도 하니 인스타그램에서 주목 받고 싶은 유혹에 동물학대에 눈을 감을까 걱정이다. 그런 사진이 올라왔을 때 호응보다 비난이 쏟아지는 성숙한 시민 의식을 기대해본다.

여행지에서의 먹거리도 신경 써야 한다. 여행지에서는 새롭고 고급스러운 요리를 맛보고 싶은 욕구가 커지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아서 원숭이 고기 등 야생동물 고기를 먹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샥스핀, 푸아그라 등의 유혹에는 넘어가기 쉽다. 샥스핀과 푸아그라는 동물학대로 얻은 식재료이며, 특히 샥스핀은 멸종위기 종으로 만든 요리이다. 관광지 호텔에는 멸종위기종으로 만든 해산물 요리를 제공하는 곳이 많으니 유념해야 한다.

상아, 깃털, 모피, 가죽 등 동물 부산물로 만든 기념품도 구입하지 않아야 한다. 동남아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선물로 많이 구입하는 루왁커피를 비롯해서 각종 동물 똥을 이용해서 만든 커피는 야생동물을 좁은 우리에 가두고, 커피콩만 먹여서 영양실조에 걸리게 하는 등 지독한 동물학대를 통해서 생산된다. 중국에서 호랑이 뼈로 만든 술이나 약재를 구입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호랑이 관련 제품을 제조, 판매하는 호랑이 공원들은 종 보존을 위한 공간이라고 홍보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호랑이를 무한 번식시키는 곳이다.

 ◇동물학대에는 적극적 항의를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여행을 하려면 사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패키지여행이라면 일정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자유여행이라면 가는 곳이 동물복지가 지켜지는 곳인지 사전에 알아봐야 한다. 지난해 태국 치앙마이 코끼리 보호소에 가려고 알아보는데 비슷한 이름이 굉장히 많았다. 구글 리뷰 등을 뒤져보니 이름만 보호소를 뜻하는 ‘생추어리’일 뿐 굶기거나 여전히 코끼리 트레킹을 하는 등 코끼리를 학대하는 곳이 많았다. 요즘은 업체도 관광객이 동물을 이용하는 곳을 기피한다는 것을 알고, 마음 편하게 돈을 쓰고 갈 수 있도록 동물을 보호하는 곳인 양 위장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것들을 다 인지하고 준비를 했는데도 의도치 않게 동물을 학대하는 곳에 가게 될 수 있다. 그럴 때면 행동을 할 차례다. 패키지로 갔다면 여행사에 항의를 하고, 자유 여행이었다면 관련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을 넣거나 동물단체에 신고한다. 항의가 많아지면 여행사에서 다음부터 일정에서 동물학대 코스를 제외할 것이고, 지자체나 동물단체는 몰랐던 동물학대 업체를 알게 되고 시정할 수 있게 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작은 행동이 동물학대로 유지되는 관광산업에 조금씩 균열을 낼 것이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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