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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언어번역기] 영수회담에 집착하는 황교안의 속마음

입력
2019.06.05 16:25
수정
2019.06.0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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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오른쪽) 자유한국당 대표가 여야 5당 대표와 회동 뒤 따로 일대일 회담을 하자는 청와대의 절충안도 사실상 거부해, 막힌 정국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왼쪽 사진은 지난 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오른쪽은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장외집회 연단에 선 황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ㆍ연합뉴스
황교안(오른쪽) 자유한국당 대표가 여야 5당 대표와 회동 뒤 따로 일대일 회담을 하자는 청와대의 절충안도 사실상 거부해, 막힌 정국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왼쪽 사진은 지난 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오른쪽은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장외집회 연단에 선 황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ㆍ연합뉴스

‘3김(김대중ㆍ김영삼ㆍ김종필) 시대’에 있었던 정치언어가 다시 소환됐다. 바로 ‘영수회담(領袖會談)’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과 1대1로 만나는 영수회담을 고집하면서다. 청와대가 이를 일부 받아들였지만, 황 대표는 또다시 이를 거부하고 회동 참여 정당을 제한해 역제안을 했다. 현재로서는 막힌 정국이 대통령과 여야 정당 대표들과 회담에서 풀릴 수 있을지 오리무중이다.

 ◇황교안이 소환한 ‘3김시대’ 영수회담 

영수회담은 다소 유통 기한이 지난 정치언어다. 여야의 거대 양당 만이 존재했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통령과 야당 총재(지금의 당 대표)가 만나 여러 정치 현안의 담판을 짓는 자리였다. 야당을 총재라는 ‘1인 보스’가 좌지우지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영수(領袖)는 한자로 옷깃과 소매를 뜻한다. 예로부터 당파나 무리의 우두머리가 만나면 예의를 차리려 옷깃을 여미고 소매를 걷은 뒤 악수를 하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 영수회담이라는 단어는 국가의 최고 지도자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을 여권의 수장 정도로 격하하는 성격도 있다. 반면, 대통령과 마주하는 이는 지위가 격상되는 효과를 누린다는 얘기가 된다.

황 대표가 청와대에 잇따라 요구해온 문 대통령과의 1대1 회담은 바로 과거의 영수회담을 하자는 얘기다.

청와대가 4일 황 대표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여야 5당 대표들과 집단 회동을 한 뒤 1대1 회담을 하자고 했지만, 황 대표는 다시 거부했다. 집단 회동에 비교섭단체인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빼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협치의 상징적인 기구로 천명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의 정신에 반하는 주장이기 때문에 이는 청와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마지노선이다. 과거 한국당의 이 같은 주장을 청와대가 꾸준히 반대해왔기 때문에 황 대표의 이 같은 주장에는 판을 깨자는 저의가 담겨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황 대표가 문 대통령과 얼굴을 맞대고 국회 정상화의 물꼬를 트려는 의지가 과연 있는지 의심된다.

 ◇황교안, 3김시대 보스정치 꿈꾸나 

문재인 대통령과 황교안(오른쪽)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황교안(오른쪽)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황 대표의 속내는 무엇일까. 굳이 다른 야당들을 제치고 영수회담을 요구하는 이유는 회담의 효과보다 회담 자체로 누릴 수 있는 정치적인 위상을 계산한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처럼 대통령에 맞서는 강력한 야당 지도자의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통령급 대표’라는 이미지다. 다른 야당들의 지위와 자신은 다르다는 차별성도 부각 시킬 수 있다.

청와대의 절충안을 또다시 거부하고 역제안을 한 모양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 간의 회담 얘기는 지난달 9일 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아 했던 대담에서 나왔다. 당시 문 대통령은 북한에 인도적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함께 모여 협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황 대표는 회담의 주제에 이견을 밝히며 집단 회동이 아닌 1대1 회담을 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난색을 표하던 청와대가 수정 제안을 했는데도 황 대표는 또다시 이를 거부하고 다른 제안을 한 것이다.

자신의 요구를 청와대가 수용하도록 해 정국 주도권을 쥐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닐까.

 ◇협상 포기하면 무얼 할 건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5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에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 들어서고 있다. 왼쪽부터 윤소하 정의당, 김관영 바른미래당,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문 대통령,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5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에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 들어서고 있다. 왼쪽부터 윤소하 정의당, 김관영 바른미래당,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문 대통령,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황 대표의 이런 행보를 두고 한국당 사정에 밝은 정치 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우뚱 한다. 그 중에서도 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 소장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당 대표는 결정이 아닌 결단을 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장 소장은 “때로는 불리한 제안이라도 받아들여 협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게 정치이고 당 대표의 역할“이라며 “황 대표가 아직 정치인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풀이했다. 더구나 청와대는 황 대표의 제안을 일부 받아들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황 대표는 그것마저 걷어찼다. 지금까지 장관, 총리로서 결정하는 자리에만 있었던 황 대표의 약점이 드러난 셈이다.

문 대통령을 향해 ‘좌파독재’를 부르짖어온 황 대표가, 청와대의 한발 물러선 제안에도 변화하는 기색을 비치지 않는다면 ‘국정운영의 발목만 잡는 대안 없는 야당’ 프레임을 뒤집어 쓸 우려도 있다. 같은 진영이자 전임 대표인 홍준표 전 대표조차 최근 ‘좌파독재’ 공세를 두고 “사실 독재정권은 우파 쪽에서 했지 않느냐”며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누워서 침 뱉기’라는 얘기다.

정치는 대화와 협상으로 이상과 실리 사이에 적절한 선을 찾는 과정이다. 대화도, 협상도 않겠다는 건 정치를 포기한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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