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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고용난인데” VS “생산인구 주는데”… 정년 연장, 독인가 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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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고용난인데” VS “생산인구 주는데”… 정년 연장, 독인가 약인가

입력
2019.06.04 04:40
수정
2019.06.04 07:2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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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연장 카드 꺼내 논쟁 거세져 

청년(15~29세) 실업률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청년(15~29세) 실업률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정년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 정년연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범정부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의 1차 논의 결과를 이달 중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최악의 고용난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당장은 고용 여력을 줄일 수밖에 없는 정년연장이 우리 사회에 약이 될 지, 독이 될 지를 둘러싼 논란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왜 정년연장인가 

정부가 정년연장 카드를 꺼낸 배경에는 우선 노인 인구 급증에 따른 재정부담을 빼놓을 수 없다.

3일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내년부터 2029년까지 10년간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연평균 48만명씩 급증한다. 최근 3년간의 연 31만명보다 증가폭이 부쩍 높아지는 것이다. 올해 769만명인 노인 인구도 2025년(1,051만명)에는 1,000만명을 넘어선다.

노인 인구 급증은 재정 부담으로 직결된다. 기초연금 등 정부의 노인에 대한 ‘의무성 지출’은 2022년까지 연평균 14.6%씩 급증할 전망이다. 지난해 정부의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노인에 대한 의무지출은 작년 9조8,336억원에서 2022년 16조9,725억원까지 불어난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 의무지출은 물론, 돌봄서비스, 일자리사업, 치매 관리 등 관련 예산 투입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연장은 ‘노인층의 경제활동 지속→소득ㆍ소비 증가→조세수입 증가→정부 부담 감소’의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실제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할 경우, 노년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당 고령인구)가 현재의 20.4명보다 7.4명 떨어진 13.1명으로 낮아지고, 9년 뒤인 2028년에야 20.5명이 되는 등 미래세대의 노인부양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65세 이상 고령인구 규모. 그래픽=김경진 기자
생산가능인구(15~64세) ·65세 이상 고령인구 규모. 그래픽=김경진 기자

 ◇최악 고용난에… 정년연장 도움될까 

정년연장은 사회 전반의 퇴직시기를 늦춘다는 의미다. 활황기가 아닌 이상, 기업으로서는 그만큼 신규채용을 꺼리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요즘 같은 취업난 하에서 시행하면 고용 감소 요인으로 작용해 청년과 노년층 사이 일자리 갈등을 더 자극할 수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정년 60세’ 법제화를 추진한 이후(실제 실행은 300인 이상 기업 기준 2016년부터), 6~7%에 머물던 청년 실업률이 10%까지 치솟았다”며 “일자리를 물려줘야 할 사람들이 일을 더 할 수 있게 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실제 남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정년연장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2017년)에 따르면, 1980~2016년 사이 전체 취업자 가운데 고령층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할수록 청년층 비중은 0.8%포인트 감소했다. “경제 성장기에는 청년과 고령층 일자리가 함께 증가하지만, 성장이 지체되면 두 계층의 일자리는 대체관계를 이루게 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반면 인구 구성이 급변하는 수년 후에는 사정이 달라진다는 반론도 나온다. 인구학자인 이삼식 한양대 교수는 “2020년대 중후반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면 결국 노동력 부족으로 연결된다”며 “5~6년 후에 정년연장이 시행되면 오히려 20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될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홍 부총리가 “향후 10년간 고용 시장에서 나가는 사람이 80만명, 들어오는 사람 40만명”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현실화까진 산 넘어 산 

전문가들은 정년연장 관련 논의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입을 모은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정년연장으로 절약되는 재정을 청년 채용에 투입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평균ㆍ건강수명 연장, 재정부담 축소, 노동력 부족 해결 차원에서 장기적인 균형을 생각한다면 정년을 연장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선진국들도 비슷한 이유로 정년연장을 추진 중이다. 일본은 65세에서 70세로의 연장안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도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할 계획을 세웠다. 미국과 영국은 ‘나이를 이유로 퇴직시키는 것은 차별’이라는 이유로 아예 정년제도를 없앤 지 오래다.

물론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이나, 성과주의 임금제도가 자리 잡은 영국의 사례를 한국이 직접 차용하기는 어렵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가 심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비롯해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 등 경직적인 임금체계 △노동수요 변화와 무관하게 유지해야 하는 노동경직성 △촘촘하지 못한 사회안전망 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선진국 수준의 정년연장 혹은 폐지 논의는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

이병태 교수는 “노동ㆍ임금체계 유연성을 함께 추진하지 않은 채 정년연장만 추진하면 청년실업이 급증한 원인이 된 2013년과 같은 우가 되풀이 될 것”이라며 “이런 문제에 대해 노동계를 설득할 자신이 없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정년연장을 둘러싼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고용 형태를 유연화하고, 능력과 생산성을 기준으로 임금구조를 개편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 중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당장 법정 정년을 늘리는 것보다 우선 60세 초과 근로자를 그대로 고용하는 기업에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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