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31>가정 밖 청소년

※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한 두 가지 측면에서는 소수자입니다. 자신의 불편은 크게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의 소수자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인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화요일 한국 사회에서 유독 힘들게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경기 의정부시 신흥로에 있는 일시청소년쉼터 포텐에서 김선혜 사회복지사(거리상담사·맨위)가 가정 밖 청소년들을 상담하고 있다. 김씨는 “방황이 심한 청소년일수록 상처가 깊다”며 “아이들이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 철이 없지만, 상담을 해보면 여느 또래와 다름없는 순수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의정부일시청소년쉼터 제공

민수(가명ㆍ19)는 일곱 살 때 첫 가출(家出)을 했다. 술만 마시면 사정없이 때리던 친아버지를 벗어나 새로운 가정으로 입양된 지 40여일 만이었다. 민수는 “새 부모님을 만나면 매를 맞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양부모님은 ‘네가 친아버지를 닮았다, 나쁜 버릇을 없애주겠다’며 때렸다”며 “매를 맞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처음으로 집을 나갔다”고 말했다.

민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태도가 나쁜 아이’로 기억했다. 화가 나면 침을 뱉고 욕설을 해서다. 그는 “친아버지가 하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한 것 같다”며 “양부모님께 초등학생 시절 내내 혼나며 말버릇을 많이 고쳐 감사한 부분도 있지만, 때때로 청소기를 집어 던지고 머리에 피가 날 때까지 때리는 건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민수는 양부모와 갈등을 겪으며 자주 가출을 했고, 중학교 3학년 때 파양(罷養ㆍ양자 관계를 끊는 것)됐다.

거리에 나온 민수는 친구를 가족처럼 여겼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 몇몇과 함께 ‘가출팸(가출한 학생들이 이룬 무리)’을 꾸렸다.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월세방을 마련하고 생활비와 술, 담뱃값도 벌었다. 친구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싶어 돈이 생길 때마다 옷과 신발을 사주거나 오토바이 기름값을 대신 내주기도 했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구걸도 하고 노숙도 했다. 가정을 벗어났지만, 민수는 여전히 마음이 공허하고 우울감에 시달린다고 털어놨다. “밖에서 만난 친구들은 제 돈만 쪽쪽 빨아 먹더라고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친구도 가족도 곁에 없어요.”

강준구 기자
◇가출 원인 1순위 “가족과의 갈등”

폭력ㆍ학대ㆍ방임과 가정 해체 등의 이유로 가정을 떠나 거리를 맴도는 청소년들이 열악한 생활 환경과 정서적 어려움에 고통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수처럼 가정 밖 청소년이 될 위험도가 높은 청소년(9~18세 기준)을 약 5만6,0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가출(비행)청소년’이라는 낙인을 찍고 원가정 복귀에만 치중할 뿐, 이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자립을 돕는 데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청소년 쉼터와 회복지원시설의 만 15세 이상 청소년 730명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발간한 ‘가정 밖 청소년 실태와 자립지원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가정 밖 청소년들은 평균 15.6세에 첫 가출을 경험했다. 청소년들이 집을 나온 주된 이유(74.2%)는 가족 간 갈등과 폭력이었다. 특히 1년 이상 가정 밖에서 생활한 이들의 경우 아버지, 어머니와의 관계가 나쁜 편이라는 응답이 각각 58%, 41.2%로, 한 달 미만 가출자(44.3%, 29.4%)보다 월등히 높았다. 가정 내 문제가 심각할수록 거리 생활이 길다는 애기다.

청소년들이 경험한 가정 내 학대는 여러가지였다. 이들은 ‘부모님으로부터 심한 말이나 욕설을 들었다’(56.8%)거나, ‘나의 미래에 관심이 없음’(49.1%), ‘공부나 생활 비용을 대지 않음’(48%), ‘멍이 들거나 상처가 남을 정도로 때림’(43.8%), ‘아파도 그냥 내버려 둔다’(33.6%) 등을 학대로 꼽았다. 이런 경험은 경제적 수준이 낮은 가정일수록 심각한 경향이 있었다.

가정을 떠난 청소년들은 부모와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정서적 거리도 멀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64.8%가 “부모님을 믿지 않는 편”이라고 답했다. 마음의 병도 깊었다. 가정 밖 청소년의 40.8%는 최근 3개월 동안 화를 참지 못해 문제를 일으키는 등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절반(44.4%) 가량은 모든 일이 재미가 없고 귀찮게 느껴지는 등 무기력함을 경험하고 있었다. 최근 3개월 간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짜증이 나는 일이 잦았다는 응답도 절반(51.5%)을 넘었다.

강준구 기자
◇우울ㆍ자해ㆍ중독… “마음의 병 깊어요”

실제로 기자가 만난 청소년들도 공통적으로 ‘마음의 병’을 호소했다. 몇 달 전부터 경기 지역의 청소년 단기 쉼터에서 지내며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민수도 만성적인 우울증으로 단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쉼터에선) 사람들이랑 친해지려면 웃어야 하는데, 나는 우울하지만 웃고 있는 가면을 써야 하니 어려울 때가 많다”고 했다. 경남, 전남, 충남 등의 청소년 일시 쉼터(7일 이내 보호), 단기 쉼터(3~9개월 보호)에 차례로 입소할 때마다 며칠을 지내지 못하고 뛰쳐나왔던 이유다. 민수는 “이번 쉼터에선 마음에 맞는 ‘호랑이 선생님’을 만나 오래 버티고 싶다”고 했다.

중ㆍ고등학생 시절 내내 가출을 반복했던 이수진(가명ㆍ21)씨는 과거 스스로를 자해했던 기억이 여전히 상처로 남았다고 했다. 재혼 가정 자녀인 수진씨는 초등학생 때까지 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게 됐다. 그러나 전학을 간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면서 긴 방황이 시작됐다. “내가 다치면 학교에 안가도 되니 돌로 손을 무작정 찧었어요. 차라리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하고 바랐었죠.” 그는 현재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는 “지금도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마음의 병이 깊어지면, 몸도 아프기 마련이다. 중학교 1학년 무렵 첫 가출을 했던 인영(가명ㆍ18)이는 매일 소주 3~5병을 마실 만큼 알코올 중독이 심해 대부분의 치아가 부식돼 부러졌다. 인영이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외박이 잦았고, 화가 난 아빠는 ‘네가 엄마를 닮아 사고를 많이 치고 다닌다, 괜히 낳았다, 몸 파는 사람이나 돼라’며 폭언을 했다”며 “나도 홧김에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칠 무렵 소주를 처음 먹었는데, 술을 마시면 나쁜 생각도 나지 않고 기분이 좋아져 계속 마시게 됐다”고 털어놨다. 인영이는 중학생 때 학업을 중단하고 가출팸 생활을 하면서부터 스스로를 아예 돌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성매매를 해 월세방을 구할 돈을 벌어도 오빠들에게 돈을 떼이고 나면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돈이 없었다”며 “밥을 챙겨먹지 않고 소주와 물만 먹을 때가 많다 보니 식도염도 심하고 이도 모두 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4월 가정 밖 청소년 인영(18)이가 의정부일시청소년쉼터 거리상담사들에게 마음을 담아 보낸 편지. 인영이는 6년째 알코올중독을 앓고 있어 치아가 부식돼 치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의정부일시청소년쉼터 제공
◇자립 기로에서 ‘외줄타기’

가출이 일시적 방황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된 청소년들의 상황을 보면, 일정 기간 거리 생활을 하다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집을 나오는 과정을 반복하는 특성이 있다. 학대나 부모와 갈등이 깊어 원가정 복귀가 어려운 이들은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많은 가정 밖 청소년들은 장기적인 진로 계획을 세워 자립을 준비하기보다는 당장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숙련ㆍ고위험ㆍ불안정 일자리를 맴돌며, 심리적으로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문제는 이들이 극단적 상황에 이르러서야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다는 점이다. 지난 6년간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인영이도 이가 다 망가진 최근에서야 의정부일시청소년쉼터(포텐)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포텐은 인영이가 방황할 때마다 안부를 물어주던 거리상담사(아웃리치요원)들이 있는 곳이다. 그는 이곳을 통해 알코올중독치료센터와 치과 등을 다니며 치료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준구 기자

하지만 모든 가정 밖 청소년들이 자립할 수 있는 지원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인영이는 치과 치료비만 550만원이 필요한데 의정부일시쉼터의 1년 의료비 예산은 1,600만원(1인당 연간 100만원 제한)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기관에서는 민간 후원 등을 통해 지원금을 조달하는데, 지원 대상자가 기관과의 약속을 어기면 서비스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전종수 의정부일시청소년쉼터 소장은 “예산이 늘 부족하기 때문에 고액의 치료비를 지원해야 할 일이 생기면, 자립 의지가 더 강한 청소년을 가려 지원할 수밖에 없다”며 “극한 상황에 이르기 전에 적절한 개입이 이뤄져야 제대로 된 자립으로 이어지는데 충분히 도와줄 수 없을 땐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정 밖 청소년을 단순한 가출(비행)청소년으로 여기는 색안경을 벗고,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시설보호종료아동처럼 자립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위험 가정 밖 청소년은 개인적 비행(非行) 때문이 아니라 가정의 구조적ㆍ기능적 문제로 원가정 복귀가 불가능한 경우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김희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는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법적 개념도 모호하고, 가출을 일시적 비행으로 여기다 보니 이들을 위한 지원은 단순 보호에 치중돼 있다”며 “가정 밖 청소년도 보호종료아동처럼 단순 보호보다 자립 지원으로 정책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