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잡지 에피 최신호 ‘과학자의 패션’ 고찰
과학과 패션은 낯선 조합이다. 밤낮없이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에 전념하는 이공계 과학도들은 매일 똑 같은 스타일의 편한 옷차림을 추구하는 탓에 종종 ‘패션테러리스트’ 오명을 쓴다.
과학비평잡지 ‘에피’는 최신호(8호)에서 과학자들이 왜 패션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지에 관해 다뤘다. 이론물리학자, 화학자, 과학관 관장, 공대 대학원생 등에게 직접 의견을 들었다. 이들은 ‘옷 잘 못 입는 과학자’라는 고정관념의 실체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과학자들이라면 응당 자주 입을 거라 기대하는 흰색 가운의 실험복. 그러나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은 “실험복은 일종의 제의(祭儀) 복장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교수님들은 신입생들의 첫 강의에서 또는 학생들을 혼낼 때 실험복을 꺼내 입었다. 학생들도 실험복은 청소할 때나 입었다.” 실험복이 과학자들에게 일상복일 것이란 편견은 오해라는 얘기다.
체크무늬 셔츠로 상징되는 공대생 패션에 대한 자아성찰도 눈에 띈다.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금융공학을 전공하는 장성민씨는 공대생들이 유독 체크무늬 셔츠를 즐겨 입는 데 대해 튀지 않으려는 성향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눈에 띄게 나서고 싶지 않은 대부분의 공대생은 매 순간 적당한 거리감을 생각한다. (중략) 논쟁적인 주제에 대한 적당한 무관심, 충돌하는 가치관들과의 적당한 타협”이다. 민무늬가 주는 심심함은 탈피하면서 화려한 패턴이 주는 부담감은 덜어낸 체크무늬는 타인의 시선에서 가장 자유로운 옷차림이란 설명이다.
여성 과학자들이 대체적으로 무채색 계열의 특징 없는 스타일을 고수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눈에 띄는 과학계에서 쓸데없는 편견과 오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무난한 옷차림으로 스스로를 감추려 한다는 것. 국내 최초 여성 로봇공학자들의 네트워크 모임인 걸스로봇의 이진주 대표는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대체로 개인이 튀는 것을 저어하는 문화를 가진다”며 “연구 자체는 극도의 차별성과 탁월성을 추구하도록 권장되지만, 다른 부분은 기를 쓰고 평범해지도록 요구받는다”고 꼬집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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