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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게임 중독

입력
2019.06.03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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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게임전시회 지스타(G-STAR)에서 관람객들이 PC게임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 지스타(G-STAR)에서 관람객들이 PC게임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세계보건기구에서 국제 질병 분류표(ICD) 최신 개정판에 ‘게임 중독’ 항목을 만장일치로 추가했다. 상당한 당위성이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직접 개정판을 사용할 의사로서, 이 결정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논란으로 번지고 있으며 요점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국제 질병 분류표는 의사가 진료실에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모든 의사는 환자를 진료하면 이 목록에서 찾아 진단을 붙인다. 현재 사용되는 ICD-10은 1994년부터 사용해 많은 개정을 거쳐 작금에 이르렀다. 개정판인 ICD-11은 오랜 준비를 거쳐 2022년부터 사용된다. 개정에 약 30년이 소요되는, 시대상과 의료의 흐름을 반영하는 분류표다.

ICD의 기본 목적은 전 세계 환자의 진단과 분류이며, 의학적으로 통계를 내고 연구로 이어지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방대한 목록에는 비단 질병만 들어있지 않다. 현재 ICD-10에는 ‘저소득’, ‘실직의 두려움’, ‘시험 낙방’ 같은 다양한 상황과, ‘악어에게 물림’같은 구체적인 손상과, ‘빈 둥지 증후군’처럼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까지 들어있다.

ICD-11은 이전 1만4,400개의 목록을 5만5,000개로 확대한다. ‘우주선과 충돌’, ‘성별 불일치’ 등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전통약 복용’이나 ‘침술로 인한 손상’같은 진단명도 새로 생겼다. 전통 의학을 부정한다기보다 세계 각지의 무허가 의료 행위로 인한 부작용을 대비하는 진단명이다. 이 분류표에 포함된다는 것은 인간이 다양한 이유로 고통받고, 그에 따른 치료가 필요하다는 함의다. ‘게임 중독’은 이 목록에 포함되었다.

이로써 의사는 진료실에서 그 진단명을 쓸 수 있으며, 진단 기준을 정하고 통계를 내며 연구를 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그뿐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게임 중독’의 정의는 이렇다.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에 몰두하는 생활 패턴이 일 년 이상 지속됨.’ 실제 이 정의에 부합한다면, 대상자의 인생이 순탄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도움을 받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게임과 관련된 모든 차별과 부정적인 시선에 반대한다. 과도한 규제 또한 반대하며, 모두가 게임을 충분히 즐길 인간적 권리를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의료인으로서, 게임의 과몰입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치료를 원하는 사람이 향후 30년간 세계적으로 일정 수가 발생할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현재 이 사람들은 '비특이적 기타 중독'으로 분류되지만, 이제부터는 ‘게임 중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같은 원인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분류한다면, 어느 정도가 인간에게 불편감을 주고, 어떤 치료가 효과적인지 연구를 진행할 수 있으며, 동반한 사회환경적 문제도 밝혀낼 수 있다. 이는 ‘게임’이 ‘만악의 근원’으로 인정되었다는 논리와는 다르다. 이 결정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방과 치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방법적으로 최선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 의료계에겐 그 의무가 있다. 하지만 게임 과몰입으로 일상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비한다는 사실로,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거나 낙인을 찍는 집단은, 이미 게임이라는 문화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고통받지만 적절한 기준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의 실례는 오히려 부정적인 인식만을 가져올 것이다. 차라리 일정선을 정하고 나머지를 정상으로 분류한다면 긍정적일 수 있다. 게임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창조된 존재이며, 즐거움에는 워낙 중독성이 따른다. 과몰입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치료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자유를 주자. 그리고 어떤 존재도 혐오하지 않는 것은 모두의 몫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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