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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철거된 제비 둥지

입력
2019.05.3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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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던 서해 작은 섬에 다리가 새로 놓이고 외지인의 발길이 늘었다. 인천 강화군 주택가 처마 밑에 힘들게 둥지를 튼 제비가 경계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흥수 기자
조용하던 서해 작은 섬에 다리가 새로 놓이고 외지인의 발길이 늘었다. 인천 강화군 주택가 처마 밑에 힘들게 둥지를 튼 제비가 경계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흥수 기자

도시도 지구 생태계 안에 있는 곳이니, 인간 이외에도 많은 동물이 살아간다. 하지만 그 동물들 중, 인간을 신뢰하며 인간과 함께 살아가려는 동물이 있을까? 개나 고양이처럼 인간이 길들인 동물 말고 말이다. 포유류 중에는 딱히 떠오르는 동물이 없지만, 공룡의 후예인 새 중에는 인간에게 다가오는 녀석들이 종종 있다.

대표주자가 도시에서의 삶에 익숙해진 비둘기다. 인간을 졸졸 쫓아다니며 먹이를 내놓으라고 보챈다. 참새 중 용감한 녀석들은 식당 안까지 들어와 탁자 아래를 뛰어다니며 잘도 먹이를 찾는다. 바닷가에 접한 도시에서는 갈매기가 비둘기의 역할을 한다. 비둘기가 땅에 떨어진 먹이를 주워 먹는 것과는 달리, 갈매기는 사람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공중에서 잘도 받아먹는다. 가끔 도시 공원으로 내려오는 곤줄박이는 다른 산새들이 기겁을 하며 도망 다닐 때, 인간에게 잘 다가온다. 손바닥에 땅콩을 올려놓고 조용히 기다리면 예쁜 곤줄박이들이 날아와 손바닥 위에 앉아 땅콩을 잘도 쪼아 먹는다. 새가 없었다면 인간은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을 졸졸 쫓아다니며 인간에게서 먹이를 구하는 새들도, 새끼를 키울 둥지를 일부러 인간과 가까운 곳에 짓지는 않는다. 가끔 에어컨 실외기 뒤쪽에 비둘기가 알을 낳기도 하고, 신발장 안에 딱새가 둥지를 틀기도 하지만, 그들이 일부러 인간의 집을 찾아와 둥지를 지은 것은 아니다. 온통 인간 투성이다보니, 집을 지었는데 거기에 인간이 살고 있었을 뿐이다. 아차 싶었을 거다.

그러니 제비는 정말 눈물나게 감동적이고 고마운 새다. 제비는 일부러 인간의 집에 찾아와 둥지를 짓는다. 처마가 사라진 도시에서 제비에게 요즘 인기있는 집터는 빌라 필로티다. 사람들이 1층에 거주하는 것을 꺼리고, 주차공간도 필요하니, 요즘 지어지는 빌라의 대부분은 1층을 필로티 구조로 만들어 주차장을 넣었다. 덕분에 제비가 집을 지을 공간이 생겼다.

제비가 일부러 인간을 찾아오는 것은 인간과 가까이 사는 것이 더 안전했기 때문이다. 자연은 뱀이나 육식 조류같은 천적이 많은 위험한 곳이다. 인간의 집에는 제비의 천적들이 가까이 오기를 꺼린다. 인간은 제비의 천적을 쫓아주기도 하고, 제비를 해하지 않으니, 제비는 인간에게 신뢰를 갖고 인간을 찾아와 집을 짓는다.

얼마 전 우리 동네의 한 빌라 필로티에 제비가 날아와 집을 짓는 장면을 보았다. 우리 동네에 둥지를 짓고 번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라 반갑고 신기한 마음에 집 짓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만약 제비가 아닌 다른 새였다면, 둥지를 짓는 모습이 아무리 궁금했어도 못본 척 지나가며 눈만 힐끗 흘겼을 것이다. 자신의 둥지를 인간에게 들켰다고 생각하는 순간, 둥지를 버리는 새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을 신뢰하는 제비는 인간이 쳐다봐도 열심히 진흙과 지푸라기를 날라 집을 짓는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둥지는 형태를 갖춰 갔다.

그렇게 둥지 공사가 시작된 지 5일째 되던 날, 벽에 진흙 자국만 남긴 채 제비 둥지가 사라졌다. 누군가 제비의 둥지를 무너뜨린 것이다. 5일 동안 애써 지은 집이 무너졌으니 제비는 망연자실했을 것 같다. 제비의 수고가 물거품이 된 것도 안타까웠지만, 내가 정말로 마음 아팠던 것은 상처받았을 제비의 마음이었다. 인간을 믿고, 인간의 집을 찾아와 집을 지었는데, 인간에 의해 자신의 집이 철거됐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그 제비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른 인간의 집을 찾아가 집을 지었을까? 아니면 이제 인간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인간이 없는 곳을 찾아 갔을까? 부숴진 집보다 부숴진 믿음이 더 마음 아팠다. 제비에게마저 외면당한다면 인간은 너무나 외로울 것 같다. 인간에게 마음을 준 동물 정도는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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