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금채 지구인컴퍼니 대표
이달 초 미국 한 식품회사가 뉴욕증시 상장 첫 날 주가 상승률 163%를 기록하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주인공은 식물성 고기 제품을 만드는 비욘드미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맥도날드 전 CEO 돈 톰슨 등이 투자해 화제가 된 기업으로 또 다른 대체육 제조업체 임파서블 푸드와 함께 미래 먹거리시장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23일 파이낸셜 타임스는 대체육 시장이 향후 10년 내에 전체 육류 시장의 10%인 1,40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도했다.
식물성 재료로 고기 맛을 똑같이 재현한 ‘한국판 비욘드미트’가 탄생했다. 못생긴 채소를 피클, 병조림, 스프레드 등 간편식으로 만드는 스타트업 지구인컴퍼니로 지난 달 자체 개발한 식물성 고기 ‘언리미트’로 만든 밥버거를 출시했다. 최근 서울 양재동에서 만난 민금채 지구인컴퍼니 대표는 “곡물이 연간 380만 톤 생산되는데 소비가 줄어 재고량이 엄청나다. 뉴욕에 출장 갔다가 식물성 고기가 든 임파서블버거를 먹고 ‘이거다’ 싶었다. 곡물로 충분히 고기 식감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기 없이 밥 안 먹는 ‘육식주의자’인데 나이 들고 건강 생각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샐러드 같은 가벼운 식사를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시장성 때문이 아니라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한 가벼운 먹거리를 만들고 싶었던 거죠.” 잡지 기자를 거쳐 카카오톡에서 커머스 마케팅 총괄, 배달의민족에서 PR사업을 총괄했던 민 대표는 2017년 푸드테크 기업 지구인컴퍼니를 창업했다.
기존에도 ‘콩고기’로 대표되는 식물성 고기가 있었지만, 분리대두단백(콩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넣어 식감이 고기보다 유부에 가까웠다. 언리미트가 콩고기와 차별화되는 건 ‘진짜 고기맛’을 재현했다는 점이다. 비욘드미트, 임파서블 푸드에 천문학적인 투자가 몰리는 배경이다. 민 대표는 “언리미트는 (콩이 아니라) 현미, 귀리, 호두, 캐슈넛, 아몬드가 주재료다. 식물성 단백질을 추출해서 압출한 다음 2차 가공할 때 고기 식감을 살릴 기술력이 필요한데, 이 부분에 대해 지난해 특허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곡류와 견과류를 주원료로 하지만 소불고기에 비해 칼로리는 10%가량 낮고 단백질 함량은 1.5배 이상 높다. 밥버거를 시작으로 소시지, 핫바, 피자, 만두 등 언리미트를 넣은 10여 개 제품을 출시하고, 언리미트 완성도가 높아지면 자체 R&D 연구소를 만들고, 닭고기 맛을 내는 제품도 개발할 예정이다. 민 대표는 “비욘드미트는 콩, 버섯, 호박 등에서 추출한 식물성 단백질을 천연 효모, 섬유질 등과 배양해 고기 특유의 식감, 풍미, 육즙의 느낌까지 구현한다. 지구인컴퍼니가 출시할 햄버거 패티에 이 배양술을 도입하려고 하는데, 양산화까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라고 말했다.
지구인컴퍼니는 이 기술로 올 2월 임팩트 투자사 옐로우독의 ‘옐로우독 힘을싣다 투자조합’ 펀드의 첫 투자사가 됐다. 민간자본 100%로 구성된 이 펀드는 전도유망한 여성 창업가를 발굴해 출자하는 ‘젠더 투자’ 개념으로 도입부터 화제가 된 바 있다. 민 대표는 “저의 비전에 공감해줄 수 있는 투자사를 만나고 싶어 작년 이맘 때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를 먼저 찾아갔는데, 그때는 (투자를) 거절당했다”고 멋쩍게 웃었다. “굵직한 계획 몇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고 싶고 그러려면 이만큼의 투자금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3년 후 5년 후 지구인컴퍼니가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핵심 경쟁력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되물으시더라고요. 회사가 나갈 방향을 IR(investor relations,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기업정보문서) 만들면서 알았고, 그때부터 식물성 고기 개발에 집중한 거죠.” 특허를 받고 두어 달 만에 투자가 결정됐다.
미국 같은 식물성 고기 열풍을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이 시장은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일”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민 대표는 식물성 고기가 국내 자리 잡는데 적어도 2,3년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전 다닌 회사가 배달의민족인데 5년간 경쟁 서비스가 꾸준히 나오면서 시장도 기업 규모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죠. 식물성 고기를 개발하고 있는 국내 업체가 2,3군데 더 있다고 들었어요. 콩고기보다 혁신적인 제품이 나와, 하나의 상품 카테고리가 만들어지면 그때 시장 규모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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