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2만여명 집결… 부시 참석, 이낙연ㆍ박원순 등 여권 잠룡 총출동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 류효진 /2019-05-23(한국일보)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은 예전과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2만여명의 추모객은 슬픔보다 희망을 나누며 “고인의 정치 유산을 계승하자”고 결의를 다졌다. 묘역 주변은 걷기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넘쳤지만, 고인을 상징하는 노란 바람개비를 든 추모객들의 표정엔 생기가 넘쳤다.

10주기 추도식의 주제는 ‘새로운 노무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첫 비서실장을 맡았던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봉하마을에서 가진 추도사에서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이제 우리는 ‘새로운 노무현’을 찾으려 한다”며 “노무현의 그 꿈을 향해 다시 전진하겠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이어 “60대 시절, 대통령님과 함께 했던 저 문희상이 일흔 중반의 노구가 됐다”며 “10년 만에야 대통령님 앞에 서서 이렇게 말씀드릴 기회를 얻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님! 보고 싶습니다. 존경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추도사에서 “대통령님은 존재만으로도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이었고, 대통령님의 도전은 보통 사람들의 꿈이었다”며 “사람들은 대통령을 마치 연인이나 친구처럼 사랑했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님은 저희가 엄두 내지 못했던 목표에 도전하셨고 저희가 겪어보지 못한 좌절을 감당하셨다”며 “대통령께서 꿈꾸시던 세상을 이루기까지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저희는 그 길을 가겠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노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대변인을 지냈다.

노무현재단은 올해 5월 전국을 순회하는 대대적인 추모 행사를 기획하면서 ‘새로운 노무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고인을 기억하면서 슬프고 미안한 감정보다 용기와 확신을 가질 수 있지 않겠냐는 일종의 ‘탈상’ 선언이었다. 앞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새로운 노무현’의 의미에 대해 “상당한 기간 애도와 추모의 시대를 가졌다”며 “이제 시대적 과제를 재발견하고 고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확산하고 발전시키는 쪽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노란옷을 입고 행사장을 찾은 추모객들은 행사 도중 일부 흐느끼기도 했지만, 대체로 밝은 분위기 속에서 고인의 추억을 나눴다.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 류효진 /2019-05-23(한국일보)

이날 봉하마을에는 당정청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소속의원 60여명이, 정부에서는 이낙연 총리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청와대에서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 등이 참석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등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도 함께 했다. 일각에서는 “여권 잠룡들의 출정식 같다”는 말이 나왔다. 다만 모친상 중인 유시민 이사장,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항소심 재판 일정이 겹친 김경수 경남지사는 불참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추도식에 앞서 권양숙 여사를 만나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선물했다. 그는 이어 추도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내는 강력한 지도자였고 그 대상은 미국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며 “저희는 물론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한미 동맹의 중요성 보다 우선하는 차이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추모객들은 부시 전 대통령의 추도사 한마디 한마디마다 박수를 보냈다.

고인의 정치적 동지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추도식에 불참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하며 “현직 대통령으로 참석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했다. 국민 통합을 위해 당분간 노 전 대통령을 가슴에 묻어두겠다는 의미였다. 대신 이날 추도식에는 김정숙 여사가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김 여사와 부시 전 대통령은 추도식장 맨 앞줄에 앉았고, 추도식 중간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가수 정태춘이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추모공연하고 있다. 김해=전혜원 기자 /2019-05-23(한국일보)

유족 측에서는 장남 노건호씨가 단상에 올랐다. 그는 “깨어있는 시민 그리고 그들의 조직된 힘에 대한 믿음은 고인께서 정치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신조였다”며 “아버님은 우리 국민들이 이루어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셨다”고 말했다. 이어 부시 전 대통령을 향해 “두 분께서는 재임기간 중 많은 일을 일구어냈다”고 추켜세웠다.

여야 지도부도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모두 추도식에 참석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민생 투쟁을 이유로 불참했다. 대신 조경태 최고위원을 단장으로 하는 한국당 대표단이 봉하마을을 찾아 예를 표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이날 일제히 서거 10주기를 맞아 논평을 내고 “노 전 대통령이 남겨 놓은 꿈을 이어가자”며 한목소리를 냈다.

노무현 재단은 이날 봉하마을을 찾은 추모객이 당초 예상했던 7,000명보다 세배 많은 2만여명을 넘겼다고 추산했다. 봉하마을 주변 도로는 아침부터 차량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을 이뤘고, 추도식에 입장하기 위한 추모객들의 행렬은 행사장 밖 수㎞에 달했다. 이인영 원대대표 등 의원들도 추도식에 늦지 않기 위해 차에서 내려 걸어서 입장했다. 부산에서 온 김세옥(59)씨는 “아직도 소탈한 웃음을 짓던 노 전 대통령이 눈에 선하다”며 “정치인들도 그의 뜻을 받들어 소통과 화합의 후회 없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해=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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