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ㆍ경기를 비롯한 전국의 버스노조가 15일 새벽 파업을 철회ㆍ유보해 시민들이 서울역 버스정류장에서 시내 및 광역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전국 동시다발로 버스 파업이 발생하기 직전 이를 막은 타협안의 핵심은 주로 준공영제 확대지만 타협안 중에 버스 기사 정년을 63세로 연장하기로 합의한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국민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원론적 비판도 있지만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면서 줄어드는 총 임금소득에 대한 제도적 보전 방법이기도 하고, 대체로 60세가 정년인 상태에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 노동시장에서 더 일할 수 있게 함으로써 노동과 복지제도 사이의 제도적 공백을 메웠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만하다.

우리가 건강, 가정, 생활을 희생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던 이유도 노동시장에서 활동할 시간이 길지 않다는 현실과 정년퇴직을 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노후 생활보장이 취약한 상황과 밀접히 연계돼 있다. 적정 시간을 일하고 오랫동안 일할 수 있어야 생산성 낮은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고 고령사회의 도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그래서 노사 타협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근로시간 단축과 정년 연장을 연계해서 추진해야 한다.

우리 산업 현장에서 초과근로가 많이 발생했던 중요한 이유로는 기본급이 적고 수당으로 임금총액을 늘려야 하는 비정상적 임금구조를 들 수 있다. 주 52시간을 넘지 못하는 근로시간 규제로 결국 초과근로 수당 대신 기본급 비중을 늘려가야 한다. 그런데 기본급을 늘리면서 기본급 인상의 기준으로 근속에 따른 연공급이 중심이 된다면 이는 중고령 인력들의 생산성과 괴리되어 정년연장을 어렵게 만들거나 인건비 부담으로 신규 채용을 억제할 것이다.

초과 근로를 줄이고 기본급 비중을 늘리는 과정은 임금체계를 직무와 역량 중심으로 개선하거나 제도화하는 방향과 같이 가야 한다. OECD가 지적하듯 우리는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산업경쟁력 제고에 한계가 있다. 흔히 근로시간을 규제하면 결국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하지만 생산성을 높일 구체적인 제도 개혁이 없다면 임금 보전과 인건비 부담을 둘러싼 갈등 비용만 높아질 수 있다. 지금보다 짧게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생애 동안 길게 노동현장에 남을 수 있는 방법은 직무와 역량 중심으로 노동시장 제도를 변화시킬 때 가능하다.

사실 직무급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바꾼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이다. 정부도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직무급의 확산을 시도했지만 실천 의지가 약했다. 공공기관들의 임금 정보를 우선적으로 공시해서 직무별로 비교 가능하게 하려는 노력도 지연되고 있고, 공무원의 위계적인 보상 구조도 대대적인 행정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직무와 역량 중심 노동시장 개혁에 더해 괜찮은 일자리에 들어오지 못한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추가 고용 필요성, 정년 연장의 경우 신규 고용 배려 방안, 임금피크제 폐지 후 신규 채용 위축 우려 등 반드시 제기되어야 할 사회적 의제들이 무시되거나 뭉개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청년실업자들은 미래에도 노동시장에서 경험과 역량 부족으로 불안정 고용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려면 짧게 일하고 길게 일하는 방식의 모색 속에 청년들까지 같이 일할 수 있는 방법까지 연계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 임금체계 개편, 정년 연장, 일자리 나누기는 같이 가야 할 중장기 정책 패키지다. 별개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개혁의 얼개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광주와 같은 지역 상생형 일자리에 더해 기존 사업장에서 노사가 근로시간을 줄이고 임금체계를 개편해 기존 직원의 정년과 신규 채용을 늘리는 시도를 한다면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패키지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른바 세대 상생형 일자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