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종려상 두 차례 수상한 ‘블루칼라의 시인’을 칸에서 만나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에서 만난 영국 켄 로치(왼족)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폴 래버티가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칸=김표향 기자
켄 로치 감독이 지난 17일(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영화 ‘소리 위 미스드 유’의 사진 촬영 행사에서 왼손을 움켜쥐어 들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블루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영국 켄 로치(83) 감독을 제72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지난 19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마주했다.

로치 감독은 칸이 사랑하고도 사랑하는 대가다.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201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받았다. 경쟁부문에만 14번 초대됐다. 올해엔 ‘소리 위 미스드 유(Sorry we missed you)’로 경쟁부문을 찾았다.

로치 감독은 1963년 BBC TV 드라마로 연출 데뷔한 후 노동계급을 주인공으로 한 사회비판적 작품을 주로 만들었다. 영화 ‘랜드 앤드 프리덤’(1995)과 ‘내 이름은 조’(1998), '빵과 장미'(2000), ‘엔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2012), ‘지미스 홀’(2014) 등이 대표작이다. 그는 현실 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하는 좌파 지식인으로도 유명하다. 국영기업을 민영화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2013년 세상을 떠나자 “대처의 장례식도 민영화해야 한다”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신작 ‘소리 위 미스드 유’는 영국 북동부 도시 뉴캐슬을 배경으로 택배 노동자 리키(데이브 존스)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내의 차를 팔아 택배 트럭을 산 리키는 자영업자가 됐다는 희망을 품고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일하지만, 고강도 장시간 노동으로 가족을 돌볼 수 없어 정작 가족의 삶은 점점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디지털 노동 플랫폼을 통해 노동자와 기업을 연결하고 노동자는 임시직 형태로 일하는 ‘긱 경제(Gig economy)’의 어두운 이면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거장의 시선은 여전히 날카롭고 애잔하다.

켄 로치의 신작 ‘소리 위 미스드 유’. 영화사 진진 제공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마치고 나서 어쩌면 그 영화가 은퇴작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시 취재를 위해 푸드 뱅크(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곳)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들 대부분이 파트타임 또는 ‘0시간 계약’(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임시직) 노동자였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착취였다. 긱 경제라 일컬어지는, 자기 고용 노동자와 파견 노동자, 임시직 노동자 문제가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다. 이 주제를 놓고 각본가 폴 래버티와 오랜 시간 대화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다르지만 서로 연결된 또 다른 영화로 만들어 볼 가치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취재는 어떻게 했나. 

“폴이 현장 조사를 했고 이후에 몇몇 사람들을 함께 만났다. 택배 기사들은 직업 유지에 위협이 될까 봐 말하기를 주저했고, 택배 창고는 취재하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촬영지 인근의 택배 창고 관리자가 큰 도움을 줬다. 실제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거나 과거에 일했던 사람들이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배우들에게 시나리오 전체를 보여주지 않고 촬영하기로 유명하다. 

“항상 시퀀스 별로 촬영한다. 배우들은 다음에 어떤 장면이 있는지 모르고 찍는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 리키의 딸이 비밀을 숨기고 있는데 부모 역할인 배우들은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 폴의 시나리오는 굉장히 치밀하다. 우리는 고치고 또 고치면서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배우들이 단어 한두 개를 보태기도 한다. 그게 배우들의 실제 삶에서 꺼낸 것 같은 즉흥성으로 나타난다. 폴이 수년간 노력해서 성취한 테크닉이기도 하다. 쇼팽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에 비유할 수 있다. 청중이 듣기엔 아무 준비 없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연주하는 듯 보이겠지만, 이미 200년 전에 쓰인 곡이다.”

 -본격적으로 영화 연출을 시작한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노동계급의 삶을 영화로 다뤄왔다. 

“여전히 핵심은 사용자와 노동자 간 갈등이다. 과거엔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했고 사용자는 ‘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임금을 깎을 거야’라고 외쳐댔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은 자영업자이고 파견 노동자일 뿐이니까 내일부터 당신과 일하지 않아도 상관없어’라고 말한다. 기술 발전으로 방법만 달라졌을 뿐 착취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면 삶은 달라졌을 거다. 내가 30~40대였을 때는 기술이 인간에게 여가 시간을 가져다 줄 거라고 모두가 믿었다. 하지만 정치를 아는 사람들은 절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다. 사용자가 노동자 수를 줄이면서 더 많은 일을 시킬 테니 말이다. 결국 변한 건 없다.”

 -유럽과 미국, 더 나아가 전 세계 곳곳에 우파가 힘을 얻고 있다. 

“과거 유럽의 좌파 정당은 선거에서 지고 사회 구조를 바꾸는 데도 실패했다. 노동 문제, 실업률, 불평등, 환경 문제 등을 개선할 수 있는 힘을 잃은 거다. 유럽에서 들끓는 분노를 우리는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목격할 수 있다. 대기업은 노동을 마치 수도꼭지처럼 틀고 잠글 수 있다고 여긴다. 실업은 빈곤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고, 그 여파가 중산층에까지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대학 강사들은 학위를 가지고 있어도 임시 강의만 맡기 때문에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한다. 이 모든 것들이 사회민주주의 좌파의 실패 때문이다. 이젠 다른 경제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켄 로치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관료제에 부딪혀 실업수당을 받기 어려워진 한 남자의 사연을 그린 영화로 2016년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진진 제공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나선 형제의 비극을 그렸다. 2006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이전 당신의 영화들 속 주인공들은 축구도 보고 맥주도 마시고 농담도 주고받는데, 이번 영화의 주인공들은 거의 쉬지도 못하고 피곤함에 찌들어 있다. 

“그렇다. 사람들이 개인화, 파편화되면서 일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끝없는 노동에 내몰리면서 삶은 더욱 고단해지고 있다. 조직화도 어려워졌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소리 위 미스드 유’를 통해 어떤 변화가 생겼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경우 이슈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사람들이 (관료주의적 복지체계)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1인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영화와 소설, 음악, 문화를 통해 토론을 시작할 수 있지만 변화를 만드는 건 다른 문제다. 다만 우리는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함께 싸울 수 있다.”

 -‘소리 위 미스드 유’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너희 세대를 많이 이해 못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이든 세대로서 청춘을 어떻게 바라보나. 

“내 낡은 의견을 강요하지 않으려 한다. 청춘들이 새롭고 뚜렷한 메시지를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그들이 진정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젊은 세대는 근본적으로 부모 세대와 같다. 방법의 차이는 있으나 아버지(기성세대)를 무너뜨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요즘 한국 감독들은 영화의 상업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의 상업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유럽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영화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간의 삶에 대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한다면 충분히 그럴 역량이 있는 창작자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삶을 위해 문학과 예술이 존재하는 거다. 창작자들을 탓하지 말고 투자자들을 탓해라.”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어느 정도 대중적 성공은 필요하지 않나. 

“우리 영화는 저예산이라 가능했다.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게 행운으로 느껴진다. 관객들이 영화 속 인물들과 고통을 나누지 않는다면 이 모든 건 무의미해진다. 모든 건 실재하는 현실이다. 관객들이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감동할 수 있을 거다.”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TV 등 동영상 스트리밍업체(OTT)를 통해 영화를 보는 걸 어떻게 생각하나. 칸영화제는 극장에서 먼저 상영하는 영화로만 출품을 제한하고 있다. 

“영화엔 특별한 무언가가 있고, 극장에서 여러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다. 파편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어폰을 꽂은 채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 극장은 우리가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곳이다. 영화가 온라인 스트리밍, TV, 블루레이 등 다른 플랫폼으로도 유통되고 있지만, 영화는 집단적 체험이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칸영화제의 입장을 지지한다.”

칸=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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