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사우디 주도 연합군의 폭격을 당한 후치 반군 점령지인 사나의 시가지 풍경. AP 연합뉴스

아라비아 반도 남단의 중동 빈국 예멘 시민들에게도 ‘라마단’(5.6~6.5)이 시작됐다. 내전 이후 5번째. 내년에는 다를 것이라는 희망의 힘으로 버텨온 지 벌써 5년이 됐다. 선지자 모하메드가 첫 계시를 받은 날을 포함한 이슬람 성월(聖月) 라마단은 무슬림에게는 규율로서 매일 준수해야 할 기도만큼이나 중요한 자아성찰의 기간이다. 라마단의 한 달간 무슬림은 절식과 금욕, 기도를 통해 몸과 영혼을 정결히 하고, 한 달 뒤 그렇게 순결하게 거듭난 개인들이 사흘의 축제 ‘이드 알피트르(Eid al-Fitr)’를 통해 나눔과 베풂을 즐기며 공동체의 가치 혹은 의무를 재확인한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예멘 시민들의 약 80%가 배급 식량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니까 라마단 금식이란 말 자체가 사치다. 라마단이 시작되기 전 한 달간의 먹거리를 미리 사두는 게 관습이지만, 그들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살인적인 인플레 때문에 화폐 가치는 바닥이고, 먹거리 자체도 드물다. 근년 들어 콜레라 같은 전염병까지 돌아 기도 공동체의 삶도 사실상 실종됐다. 내전의 계산이야 다르겠지만, 북부 수도 사나를 장악한 시아파 후치 반군과 남부 거점의 예멘 정부, 정부를 도와 내전에 가세한 사우디아라비아 주축의 연합군이 내세우는 주요 명분 중 하나도 종교적 이념이다.

16세기 이래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아온 예멘은 1839년 영국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됐다. 영국은 예멘 남부 대인도 무역항 아덴을 탐냈다. 1차대전 패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면서 북예멘(예멘아랍공화국)이 먼저 독립했고, 영국의 보호령이자 부족 간 느슨한 연맹 형태 국가를 유지하던 남예멘도 소련의 지원을 받은 좌파 민족해방전선의 주도 하에 1967년 독립(예멘인민민주공화국)했다. 남북은 70년대 냉전기 동안 여러 차례 분쟁을 치렀지만, 80년대 말 냉전체제 해체와 더불어 급속히 가까워졌다. 그러다 독일보다 4개월 앞선 90년 5월 22일, 국가 간 합의를 통해 통일했다. 하지만 그 통일은 정치인들의 야심 혹은 불투명한 낭만주의적 전망에 기반한 통일이었다. 둘은 4년 뒤 다시 찢어졌다가 2개월 간의 내전 끝에 북예멘의 승리로 무력 재통일됐지만, 이미 예멘 전역에는 전쟁-분리 독립의 앙금과 불법 무기들이 확산된 뒤였다. 그 불안의 끝이 후치 반군과의 내전과 예멘인들의 비참이었다.

그들 중 500여명이 지난해 제주도로 입국해 한국에 난민 신청을 했고, 한국 정부는 그들 중 단 2명에게 난민 지위(412명 인도적 체류 인정)를 인정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