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사퇴 김기태 감독, 16일 고별전 끝까지 벤치 지켜
“팬들에 즐거움 못 드려 죄송”… 17일부터 박흥식 감독대행 체제로
극심한 성적 부진으로 괴로워하던 김기태(50) KIA 감독이 끝내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 놓았다.
김 감독은 16일 광주 KT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직접 이 같은 결심을 발표했다. 김 감독은 "팀을 위해 책임 지고 물러나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면서 "팬 여러분께 즐거움을 드리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고, 그 동안 응원하고 사랑해주셨던 팬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KIA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2016년 주축 선수들이 빠진 와중에도 정규시즌 5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을 이끌어 지도력을 인정 받았다. 그리고 2017년에는 8년 만의 통합 우승으로 팀에 11번째 우승컵을 안기며 감독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5위로 턱걸이해 가을야구엔 진출했지만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급기야 올 시즌엔 스프링캠프부터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힘겨운 순위싸움을 하며 16일 현재 13승1무30패로 최하위에 처져 있다. 일련의 과정에서 지난 시즌엔 임창용(은퇴) 등 고참 선수들과의 불화설까지 불거졌다.
김 감독의 자진사퇴 행보는 LG 사령탑 시절 때와 너무 닮았다. 김 감독은 베테랑 선수들을 중용하는 ‘형님 리더십’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2013년 LG를 11년 만의 포스트시즌으로 인도, 일약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2014년 시즌 초반 극심한 성적 부진을 견디다 못해 그 해 4월 24일 대구 삼성전을 앞두고 돌연 상경했다. 그 일로 달갑지 않은 오명까지 얻은 김 감독이었기에 최근 야구계에서는 “김 감독이 또 그만두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실제로 김 감독의 사퇴설은 얼마 전부터 흘러나왔다.
LG는 당시 4위권과 10경기 차 가까이 벌어져 있었지만 양상문 감독 부임 이후 기적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이번에도 개막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당시에 입었던 이미지 타격을 스스로 잘 알고 있지만 자존심을 목숨처럼 여기는 김 감독이 또 한 번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엔 행동에 옮기기 전에 냉정하게 ‘절차’를 거쳤다. KIA 구단은 “지난 15일 KT와 경기를 마치고 최근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는 뜻을 구단에 전해왔다. 구단은 숙고 끝에 16일 김 감독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야구밖에 모르고 열심히 살아 왔다. 좋았던 일, 안 좋았던 일이 있었지만 좋은 추억만 남기고 가고 싶다”면서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감사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김 감독은 자진사퇴 의사를 16일 경기 전에 밝히고 5년 전과 달리 더그아웃을 끝까지 지켰다. 하지만 고별전에서도 KT에 3-6으로 패해 6연패 사슬을 끊지 못했다. KIA는 박흥식 퓨처스 감독을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다. 감독 대행은 17일 대전 한화전부터 지휘봉을 잡는다.
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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