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의 정규앨범 ‘속물들’ 발매… “훌륭한 사람은 아니어도 실망은 주고 싶지 않아”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9년 전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2집 타이틀 곡 ‘졸업’을 통해 전한 말이다. 대학을 벗어나 30대 초입에 선 청춘은 이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위로했다. 당시 밴드 멤버들의 나이도 20대였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느낀 감정들이 또래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어느덧 2월 말이 되면 전람회의 ‘졸업’보다 이 곡이 더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브로콜리너마저가 17일 새 앨범을 발매한다. 그 동안 브로콜리너마저 멤버 몇몇은 결혼을 해 부모가 됐으며, 모두들 ‘미친 세상’ 속 생활인이 됐다. 삶의 궤적이 커진 만큼 이들의 노래도 한층 성장했다.
새 앨범의 이름은 ‘속물들’이다. 불안정했던 20대를 지나 30대를 맞이한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동명의 타이틀 곡에서 브로콜리너마저는 “꽤 비싼 건물은 언제나 빈 자리가 없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져”라고 고백한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멤버들은 한 주택분양광고에서 이 곡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멤버 덕원은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한계에 대해 노래한 것”이라며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최소한 이 정도는 해낼 수 있다’는 낮은 수준의 희망에 대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대단히 멋지거나 훌륭한 사람은 못 되도, 적어도 실망시키지는 않겠다는 다짐”이라고 덧붙였다.
앨범은 2집이 나온 2010년부터 제작이 시작됐다. 그간 수 차례 발매 계획이 엎어지면서 팬들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1/10’과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등 여러 싱글 및 미니앨범이 나왔지만, 이번 정규앨범에선 이 곡들이 모두 포함되지 않았다. 덕원은 “9년 간 발표했던 노래는 좋았지만, 나중에 보니 감정적으로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친 세상’을 노래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하면서, 앞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해야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을지 고민이 깊었다”고 토로했다.
고민 끝에 내린 이들이 내린 결론은 ‘선(線)’이다. 스스로 속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세상과 타협하면서도, 적어도 최악은 되지 않겠다며 욕망으로부터 선을 긋는 것이 3집의 주제다. 청춘을 노래한 브로콜리너마저가 나이가 들며 겪은 내적 갈등에 대한 나름의 해답이다. 덕원은 “사소한 욕심에 흔들리지 말고 최소한의 품위는 지키면서 유지하자는 선언이자 다짐”이라며 “대단히 멋지고 괜찮은 이야기보다는, 시간이 흘러도 내 노래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스스로 조금 더 잘하고 버티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기는 “나이 듦이란 선택을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선을 그리면서 만들어진 한계에 대한 노래”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수록곡 ‘서른’은 브로콜리너마저가 겪었던 갈등의 초반을 묘사하는 곡이다. 김광석(1964~1996)이 1994년 ‘서른 즈음에’를 통해 청춘과 이별을 구슬프게 노래했다면, 2019년 브로콜리너마저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한다. 덕원은 “평소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좋을 때’라고 말을 들었을 때, ‘앞으로 내 인생이 지금보다 나빠질 수 있다는 뜻인가’라는 발상에서 시작된 노래”라며 “어떠한 어려움을 겪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어디가 바닥인지 모른다는 것인데, 그곳이 어딘지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밝혔다. 향기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가진 의미가 20~30년 전에 비해 달라졌다”며 “지금 대학생은 새내기 시절부터 스펙 관리를 하는 등 과거보다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브로콜리너마저는 지금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광폭 행보를 하진 않았지만, 자신만의 노래로 2030세대에게 스며들었다. 최근에는 유튜브에 ‘류지의 브이로그’를 올리며 공연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팬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고 있다. ‘서른’과 함께 공개된 ‘혼자 살아요’의 뮤직비디오 또한 유튜브에서 인기 있는 ASMR(자율감각쾌감반응) 영상 등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브로콜리너마저는 17일부터 사흘간 공연으로 팬과 직접 만날 예정이다. 덕원은 “개인적으로 4집은 편하게 작업하고 싶다”며 “한 번도 안 써봤지만, 사랑 노래도 쓰고 싶다. 중년의 사랑 같은 것도 부르면 재미있지 않겠는가”라고 웃으며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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