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부터 어떤 위안도 받을 수 없는 이들이라면 마음이 끌릴 만한 공간이다. 자연과 점, 선, 면이 이루는 구조적 예술의 가치를 아는 이면 더욱 반가울 곳이다. 강원 원주시 해발 275m 산꼭대기에 위치한 뮤지엄산(SAN) 이야기. 자연 융화 미술관으로 정평이 난 뮤지엄산이 상반기 기획전 ‘기하학, 단순함 너머’로 또 한 번 옷을 갈아입었다.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본관에 이어 새로 설계한 명상관과 함께다.
‘기하학…’전(청조갤러리 1, 2ㆍ8월 25일까지)에는 김봉태, 홍승혜, 이은선 등 작가 20명의 대표작과 신작이 걸린다. 사진, 조각, 설치 등 매체를 다양하게 구성해 뮤지엄산의 그간 기획전 중 가장 젊고 다채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정 오브제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시도부터 소통, 관계 같은 개념을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한 실험도 잇따른다. 낚싯줄, 철 막대, 연필로 표현한 최소한의 선으로 입체 공간을 만든 오종 작가의 ‘룸 드로잉’이 대표적이다.
뮤지엄산이라는 공간 자체를 캔버스로 삼은 작품도 적잖다. 미술관 천장을 가로지르는 50m짜리 실 설치작인 강은혜의 ‘인터스페이스’, 탁 트인 유리창에 비친 자연을 배경으로 또 다른 자연을 표현해 낸 정다운의 패브릭 설치작 ‘자연으로부터: 자연스럽게’가 그렇다. 작가들은 여러 달 동안 본인 화실이 아닌 미술관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작업을 진행했다. 오광수 뮤지엄산 관장은 “미술작품과 이를 담는 공간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서로를 확인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김환기 등 근현대 거장 미술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기획전과 함께 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한국미술의 산책 V: 추상화’ 상설전(청조갤러리 3ㆍ2020년 3월 1일까지)이 열린다. 높이 2m8㎝의 캔버스가 붉은 점으로 가득한 김환기의 전면점화부터 수직의 선으로 산과 배경을 표현한 유영국의 유화도 전시된다. 문신, 남관, 이성자, 류경채 등의 대표작도 한데 모여 있다.
무엇보다 올해 1월 공개된 명상관은 그 자체로 진귀한 작품이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약 132㎡짜리 돌무덤 형태의 공간인데, 바닥부터 천장으로 이어지는 선형 공간을 통해 빛이 들어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낸다. “살아갈 힘을 되찾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미술관 측 이야기에 안도 다다오가 크게 공감해 설계 요청을 수락했다고 한다. 약 20명 정도가 내부에서 함께 명상을 할 수 있고, 30분 안팎의 명상 프로그램도 상설 운영된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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