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는 지금 ‘예능공화국’
예능 방송시간 10년 전보다 3배… “중간 광고 악용ㆍ시청자 불편” 우려
가성비 높은 예능과 달리 드라마 제작은 24% 줄어… “제작할수록 적자”
국내 예능 프로그램이 ‘2시간 방송 시대’에 접어들었다. 2~3분 분량의 짧은 동영상을 즐기는 ‘스낵컬처’ 시대가 무색하다. 시간이 갈수록 ‘덩치’를 키우는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드라마 제작 편수는 줄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의 ‘평일 밤 10시 미니시리즈’ 공식도 깨졌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 치열한 경쟁이 ‘예능공화국’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방송가는 ‘예능 전성시대’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종편), 케이블채널 구분 없이 작품 회차 별 편성시간을 가장 많이 배정하는 콘텐츠가 예능이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드라마의 방송 시간이 예능보다 길었다. 최근엔 확 달라졌다. Mnet은 지난 3일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 첫 방송을 143분 편성했다. 3년 전 ‘프로듀스 101’ 시즌1의 첫 회 85분 방송 보다 60여 분이 늘었다. 지난 2일 종방한 TV조선 음악 예능 프로그램 ‘미스트롯’의 마지막 회는 156분 동안 방송됐다. 방송사들이 경쟁하듯 예능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을 늘리는 분위기다.
지상파도 예외는 아니다. SBS는 ‘미운 우리 새끼’를 약 100분 간 내보낸다. 2006년 MBC ‘무한도전’의 첫 회 방송 시간은 58분이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50여 분에 불과했던 예능 프로그램 방송 시간과 비교하면 많게는 3배까지 늘어난 것이다.
최근 20여 년간 드라마의 방송 시간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예능 프로그램 방송 시간만 폭증했다. 예능 프로그램이 제작비 대비 시청률 및 광고 매출 효과가 높아서다. 방송관계자들에 따르면 미니시리즈 기준 1회당 평균 제작비는 4억~5억원, 예능은 많아야 1억원 선이다.
방송 시장의 광고비는 한정돼 있다. 매체가 많아지면서 각 방송사에 돌아가는 ‘광고 파이’는 줄었고 결국 제작비 부담이 큰 드라마 제작은 위축됐다. 평일 미니시리즈 10여 편 중 제작비를 회수하는 건 1~2편 정도다. 지상파에서 15년 넘게 드라마를 제작한 한 PD는 “드라마는 제작할수록 적자란 불안 의식이 퍼져 방송사에서도 두 달 방송에 70억원을 투입해야 하는 드라마 기획에 소극적”이라고 귀띔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10년 96편에서 지난해 73편으로 23편이 줄었다. 최근 방송가에선 MBC가 올 가을 월화 미니시리즈 방송을 잠정 중단한다는 소문이 퍼져 배우 소속사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드라마 제작 감소로 생긴 편성 공백은 예능 프로그램 방송 시간 늘리기로 채워졌다. 올해 드라마 1편을 제작하는 한 외주 제작사 대표는 “큰 돈을 들여 드라마로 성공 확률이 낮은 모험을 하느니 될 성 부른 예능 프로그램을 오랜 시간 내보내 소소하게라도 시청률을 챙기려는 게 방송사의 전반적 분위기”라고 말했다. 드라마처럼 이야기 분량이 정해져 있지 않아 예능 프로그램은 방송 시간 늘리기도 수월하다.
하지만 두 시간을 넘는 방송 시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프로듀스X101’ 시청자인 직장인 김민정(29)씨는 “체감하기로는 3시간 동안 방송한 것 같아 보는 데 피로했다”고 말했다. 한석현 YMCA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중간광고 등 2차 광고 수익 확대를 위한 꼼수로 악용될 수 있고 프로그램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시청자 권익 보호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 52시간제 도입 등에 따른 라이프 스타일 변화는 드라마 방송 시간까지 바꿨다. MBC는 22일 첫 방송될 수목 드라마 ‘봄밤’과 내달부터 방송될 월화 드라마 ‘검법남녀2’를 모두 오후 9시에 내보낸다. 기존 10시에서 한 시간 앞당긴 편성이다. MBC는 “빨라진 시청자의 저녁 여가에 맞춘 변화”라며 “평일 미니시리즈 편성 시간을 앞으로 오후 9시로 이동한다”고 밝혔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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