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양이가...' 낸 순천 송광사 보경스님 
보경 스님이 2일 전남 순천시 송광사 내 산책 중에 탑전에 오르는 계단에 '냥이'와 함께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동그람이 최필선 ww5654@naver.com

“같이 생활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언젠가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가봤더니 ‘냥이’가 쥐를 잡아먹고 있더라고. 그걸 보며 녀석에게 불교 제1계목이 불살생이라는 걸 어찌 알려줘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 서로 눈이 딱 마주친 거에요. 그런데 녀석도 나처럼 그 상황이 어색했는지 슬쩍 눈을 피하더라고(웃음).”

출가한 지 30년도 훌쩍 넘은 스님과 육식동물로 분류되는 고양이의 어색한 동거.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맺은 보경스님과 길고양이 ‘냥이’의 인연이 시작된 지도 2년 하고도 반년이 흘렀다. 이제는 자신의 말을 조금씩 알아듣는지 쥐를 잡아다 주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며 냥이를 연신 추켜세우는 스님. 어느덧 진정한 ‘집사’의 면모를 풍기는 스님은 냥이와의 관계를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것으로 맺어진 사이”라고 했다.

냥이가 2일 보경 스님과 함께 전남 순천시 송광사 내 산책 도중 홀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동그람이 최필선 ww5654@naver.com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전남 해남군에서 유년기를 보낸 스님의 세속 시절, 집에는 개와 고양이가 함께 있었다. 하지만 꼬리를 흔들며 자신을 반기는 개와 달리 성질에 안 맞으면 금세 앞발을 휘두르며 공격성을 드러내는 고양이는 어린 시절 그에게 그저 무섭고 사나운 존재였다.

그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1980년대 초반 송광사에서 출가했다. 선방(禪房)생활을 하던 스님은 2002년부터 송광사 서울분원인 삼청동의 법련사 주지와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로서 14년간 서울생활을 하다 2016년 7월 송광사로 돌아왔다. 현재 8,000권가량 되는 독서량을 더 늘려, 출가와 함께 세운 ‘일생 1만권 독서’라는 삶의 목표에 더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지천에 널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더위를 날리던 생활을 뒤로 하고, 선풍기도 없이 여름을 나며 산사생활에 다시 적응하던 그 해 12월 냥이를 처음 만났지요.”

과일 껍질이며 방에서 나온 쓰레기를 버리려다 깜박 잊고 통로 입구에 놓아 두었는데, 냥이가 이것을 한창 뒤지던 중 방에 들어가려는 스님과 마주친 게 첫만남이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먹을 걸 챙겨주니 냥이는 스님 방문 앞에 진을 쳤고, 스님은 창고에 있던 사과박스로 집을 만들어줬다. 그러는 동안 고양이를 무서워했던 기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행동 하나하나가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였단다. 스님이 냥이와 처음 만나고 함께 겨울을 난 동안 겪었던 에피소드를 묶어 2017년 12월 발간한 책의 제목을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라고 붙인 이유다.

보경스님이 2일 전남 순천시 송광사 내 산책 중 탑전에 오르는 계단을 다 오른 후 냥이가 계단을 잘 오르는지 뒤돌아 보고 있다. 동그람이 최필선 ww5654@naver.com

스님 처소는 송광사 방장 스님이던 구산스님(1909~1983)의 사리탑을 모신 전각인 탑전 가까이에 있다. 스님과 냥이는 하루에 한 번 오후10시가 되면 탑전에서부터 일주문(송광사 입구)을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계곡의 다리 근처까지 산책을 다녀온다. 하루 중 오롯이 서로를 위해 쓰는 시간이다. 30분 정도 걸리는 야간 산책에 나설 때 스님이 “사냥 가자”고 외치면 냥이는 “야옹”으로 답한다. 스님은 “산책을 갈 땐 같이 출발하지만, 돌아올 땐 냥이가 좀 더 바깥에서 노닐다 따로 오는 경우도 많다”며 “서로 함께 하지만 방해하지 않는 게 서로 간의 원칙”이라고 했다.

스님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원래 냥이는 송광사 아랫마을에서 태어난 고양이로, 사찰 내 곳간을 지키기 위해 6년 전쯤 송광사로 들어왔다. 그러던 중 3년쯤 지나 곳간에서 멀리 떨어진 탑전 인근 스님 거처에 스스로 찾아와 생활하게 된 것이다. “박스로 만든 냥이의 방만 6곳인데, 주로 생활은 따뜻한 보일러실에 있는 박스를 주로 이용합니다. 사람도 침대에서만 자지 않고, 가끔 소파에서도 잘 때가 있잖아요.”

 ◇느림의 미학을 알려주는 고양이 

스님은 냥이와 지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했다. 분명 인간이 가지지 못한 능력이나 배울 만한 점이 있기에 수많은 동물 중에 유독 개와 고양이가 인간의 삶에 깊숙이 들어올 수 있었다는 생각에서다. 스님은 고양이에게 배울만한 점으로 단연 ‘기다리기’와 ‘바라보기’를 꼽았다.

바라보는 걸 즐길 줄 알아야 지루함 없이 오래 볼 수 있고, 오래 볼 수 있어야 조급해 하지 않고 자세히 볼 수 있으며, 자세히 볼 수 있으면 실수를 하지 않고 안정적이 된다는 논리다. “어떤 일을 할 때 조급해하면 그 일을 어그러트릴 수 있는 걸 우리도 이미 알지 않나요? 고양이는 느림의 미학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바라보기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라면, 기다리기는 관계 속에서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경쟁적으로 본인 주장만 펼친다면 상대로부터 반감만 사고 마음도 얻지 못하지만, 먼저 배려하고 경청하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다. “고양이는 먹는 것도 ‘알아서 먹을 테니, 그리 걱정스러우면 그릇이나 비워놓지 말라’는 태도에요. 밥 달라고도 안 했는데, 결국 고양이 뜻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보경스님과 냥이가 2일 전남 순천시 송광사 내 산책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동그람이 최필선 ww5654@naver.com

스님에게 냥이와의 생활은 처음으로 가족애를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가족애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젊은 나이에 출가해 지금에 이르다 보니, 생각해 볼 필요성도 못 느꼈고 소중함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살면서 그 동안 처소로 돌아올 때 누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 외출이 길어진다 싶으면 냥이가 입구까지 나와 기다리고, 잠들기 전 ‘안녕’ ‘잘자’ 하면서 말을 걸어볼 상대가 생겼으니 좋은 거지요.” 만학도로서 ‘수선사(송광사의 옛 이름) 연구’로 동국대 박사학위를 받고 관련 강의도 했다는 스님은 “그간 내가 머무는 세상만 알려 하고 알았을 뿐, 속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전혀 몰랐다”며 “아직 내 수양은 50점이겠구나,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고 했다.

탑전에서 산 속으로 약 1.5㎞ 가량 더 들어가야 나오는 불일암에서 낮에는 밭을 매고 밤에는 글을 쓰던 법정스님으로부터 생전에 ‘글이 좋다’는 말씀을 들었다는 스님은 이제 냥이와의 여름 이야기를 준비하려 한다.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를 통해 2017년 겨울 냥이를 처음 만나 서로에게 적응하는 이야기를 풀었다면, 이제는 안정적인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따뜻한 이야기로 그려본다는 계획이다.

스님은 잘 해주는 게 도를 지나치면 집착이 되고, 이는 모두에게 해가 되는 만큼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관계가 안정적인 관계라고 했다. 가족애까지 느끼게 해주는 냥이지만, 불현듯 나타났듯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야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 주변의 다른 고양이들과 영역 다툼이라도 하는지 여기저기를 다쳐서 들어올 때도 있어요. 그러면 속상하지만 여기저기 연고나 발라주는 거지, 못 나가게 할 수는 없잖아요.”

이태무 동그람이 팀장 santafe29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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