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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일본의 ‘새 시대’와 한일관계

입력
2019.05.04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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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일본 도쿄의 한 비지니스 센터에 레이와 시대를 기념하는 거대한 현수막과 스크린이 펼쳐져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1일 오전 일본 도쿄의 한 비지니스 센터에 레이와 시대를 기념하는 거대한 현수막과 스크린이 펼쳐져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5월 1일 0시 일본은 레이와(令和)라는 이름의 새로운 시간여행을 떠났다. 이때를 기점으로 일본의 모든 관공서의 공문서는 물론이고 기업 등의 웬만한 자료는 레이와라는 새 연호로 기록되고 기억된다. 새로운 일왕의 즉위를 계기로 도래한 새 시대의 개막을 축복하는 열기가 10일간의 연휴와도 맞물려 일본 열도를 연일 달구고 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연속적이지만 주관적으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주로 쓰는 서기(西紀)나 북한에서 사용되는 ‘주체 ○년’ 등도 어디까지나 인위적으로 설정된 상대적인 시간일 뿐이다. 다만 일본의 연호는 일왕의 치세에 따른 시간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일본의 시간은 일왕의 것이고, 일왕의 존재에 맞춰 설정된 것이다. 예수 탄생을 시점으로 하는 서기라는 시간관념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보면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본인은 그들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간 열차에 탑승하면서 일본은 자못 들뜬 분위기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일본인은 30년 전인 1989년 1월 쇼와(昭和) 일왕이 숨졌을 때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암울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거품경제의 절정기에 찾아온 일왕의 죽음과 복잡한 장례절차를 목도하면서 일본이라는 시계도 숨 고르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찾아온 헤이세이(平成) 30년.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가 이어졌지만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릴 만큼 일본은 점점 왜소해지고 늙어갔다. 이 와중에 헤이세이 일왕이 생전에 레이와 일왕에게 자리를 넘겨주면서 ‘새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다. 기대해온, 준비된 새 시대를 맞아 새 희망이 분출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다만, 일왕이 바뀌고 새 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작금의 일본이 보여 온 관성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헤이세이 일왕이 퇴위식에서, 그리고 레이와 일왕이 즉위식에서 말했듯이 일왕의 역할은 한마디로 ‘상징’이다. 절대군주였던 쇼와 일왕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스스로 상징을 자처함으로써 전쟁 책임을 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상징하는가. 일본 헌법이 가리키는 상징은 평화와 민주주의이고, 그것이야말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의 일왕의 존재이유이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정권 이후의 일본은 역사수정주의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헌법 개정을 추진하며 상징이 의미하는 바를 흔들어왔다. 헤이세이 일왕이 상징의 본뜻을 되새기자며 피력해온 책임과 반성의 메시지들은 정권과의 긴장관계를 잘 말해준다. 이런 긴장관계는 레이와 시대에도 이어질 수도 있다.

일본의 새 시대가 징용공 판결 등 온갖 악재로 얽히고설킨 한일관계에 청신호를 줄 것인가. 한국 입장에서 일왕은 평화와 민주주의보다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3ㆍ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탈식민주의의 기운이 거세다. 한국의 시간은 100년 전과 겹쳐져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의 정권은 과거의 책임을 부인하더니 어느새 현실 정치에서도 한국을 배제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일본과 한국이 갖고 있는 상대에 대한 인식은 각각의 시간감각 만큼이나 점점 멀어지는 형국이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다른 시간관념을 갖고 으르렁대고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소중한 이웃이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새 일왕에게 축전을 보내면서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면서 평화를 위한 굳건한 행보를 이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것은 적절했다. 일본의 새 시대와 미래지향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과거사를 망각하지는 말자는 은근한 당부이다. 일본에 새 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식민지와 전쟁이 낳은 쓰라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의 새 시대가 한일 간에 노정된 시간감각의 간극을 치유하는 ‘큰 시대’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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