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로 퇴진 주도하는 과이도, 군부 일부 세력 지지 얻어내
마두로 “쿠데타 진압”… 비밀경찰 수장은 ‘反마두로’ 선언
30일 카라카스에서 벌어진 반정부시위대와 정부군 간 충돌. 카라카스=AP 연합뉴스

3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는 베네수엘라 ‘한 국가 두 대통령’ 사태가 최대 분수령을 맞았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퇴진 운동을 주도하는 ‘임시 대통령’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군부 일부의 지지를 얻어내 군사 봉기 카드를 꺼내 들면서다. 마두로 대통령은 “쿠데타를 진압했다”고 일축했지만 확실한 지지세력이던 군부 일부가 과이도 의장 편에 서면서 사실상 내전 위기를 맞닥뜨리게 됐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한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발생한 정부군과 반정부세력 간 충돌로 한 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다쳤다. 아라구아주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사무엘 엔리케 멘데스(24)가 가슴에 총상을 입고 숨졌으며 카라카스에서만 최소 69명이 병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은 고무탄과 최루가스를 맞거나 차량에 치여 부상을 입었지만, 두 명은 정부군이 쏜 실탄에 맞았다고 BBC방송이 전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진 영상에는 정부군 장갑차가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고 물대포를 발사하는 장면이 담겼다. 시위대는 돌멩이와 화염병으로 맞섰다.

이번 충돌은 과이도 의장이 군사봉기를 시사하면서 촉발됐다. 그는 이날 오전 트위터에 올린 동영상에서 “지금 본인은 우리 군대의 핵심 부대와 만나고 있다. 국민과 군이 하나가 됐다”며 “’자유를 위한 작전’의 마지막 단계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카라카스의 라 카를로타 공군기지 외곽에서 촬영된 이 영상에서 과이도 의장은 장갑차와 무장한 군 병력 수십 명에 둘러싸여 있었다. 심지어 과이도 의장의 정치적 스승으로 가택연금 중이던 레오폴도 로페스까지 영상에 등장해 “과이도 의장의 명령으로 군인들이 나를 구출했다”면서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거리로 나서 애국심 넘치는 군인들과 함께하라”고 호소했다. 지난 1월 임시 대통령을 선언한 과이도 의장이 군과 함께 행동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베네수엘라 반정부시위대가 30일 카라카스에서 정부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카라카스=AP 연합뉴스

마두로 대통령은 이 같은 반정부세력의 움직임을 쿠데타로 규정하는 한편, 이미 실패로 돌아갔다고 일축했다. 이날 오후 국영방송을 통해 내보낸 대국민 연설에서 “제국주의 세력(미국)이 베네수엘라를 노예로 만들기 위해 합법 정권을 전복하려 했다”며 “쿠데타는 진압됐다”고 말했다. 과이도 의장과 로페스가 속한 정당 ‘대중의 의지(VP)’를 ‘테러리스트 정당’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평화를 지켜준 군 고위 지휘부가 자랑스럽다”라고 언급하며 베네수엘라 군부가 아직 그의 통제 아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스 국방장관도 함께 모습을 드러내 마두로 대통령 주장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군부의 이탈은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오타비우 헤구 바후스 브라질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베네수엘라 군인 최소 25명이 카라카스 주재 브라질 대사관에 찾아와 망명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WP는 시위가 벌어지기 전인 이날 새벽 베네수엘라 비밀경찰(SEBIN) 최고 책임자 마누엘 리카르도 크리스토퍼 피게라가 ‘반(反) 마두로’ 선언 공개서한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피게라는 지금껏 마두로 대통령에 반기를 든 정부 인사 중 최고위급이다. 과이도 의장은 시위가 마무리된 뒤 영상을 통해 다시 한 번 “마두로는 군부의 지지와 존중 모두 얻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후안 과이도(왼쪽)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30일 카라카스의 한 공군기지 근처에서 군 장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카라카스=AP 연합뉴스

다만 아직은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는 군부 세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AP통신은 "이번 군사 봉기 시도는 임시 대통령 선언 이후 과이도 의장이 추진한 가장 심각한 도전이었지만, 다수 군부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AFP통신도 “마두로의 강력한 군 장악력이 흔들린다는 신호는 없다”고 했다. 실제 브라질 측이 전한 망명 신청자 중 군 고위급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모습을 드러냈던 로페스는 카라카스의 칠레 외교공관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스페인 대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과 마두로 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에 반대하며 대권에 도전했던 유력 정치인으로, 2014년 반정부 시위 조장 혐의로 14년 형을 받았다. 현재 과이도 의장이 주도하는 반정부 투쟁을 후방에서 지휘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며, 마두로 대통령이 실각할 경우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꼽힌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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