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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국회를 선진화하라

입력
2019.05.01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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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9일 오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회의실 앞에서 드러누운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9일 오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회의실 앞에서 드러누운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지난 며칠 국회는 십수 년 만에 난장판이었다. 자유한국당의 주도 아래, 국회는 토론의 장이 아니라 난동의 장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국회의원들이 서로 욕설을 하거나 기물을 파손하지 않고 정상적인 제도권 정치를 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정치 뉴스에는 물리적 충돌 장면이 많았다. 국회 내에서 몸싸움을 하거나 국회의원들이 서로 욕설을 하는 광경을 자주 보았다. 더 거슬러 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뉴스에는 만날 대통령만 나오고 국회의원들은 잘 보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국민이 연대하고 헌신하고 행동한 끝에, 우리는 비로소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평등·비밀·자유선거를 한다. 개표방송은 예능 프로그램처럼 흥미진진하게 꾸며지고 그 결과가 신속히 공개된다.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패배했다고 목숨을 위협받지 않고,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아무 결정이나 하지 못한다. 국회TV가 모든 의사 과정을 방송하고 국회 홈페이지에서 의사결정 과정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국회에서는 날마다 많은 공청회와 토론회가 열린다.

물리적 저항 외에 방법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정권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의 통근버스를 크레인 차로 끌어가서 의사진행을 막은 날이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서로 옷을 붙잡고 밟히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던 날이 있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민주주의가 자꾸 싹을 틔우자, 국민들이 뽑은 국회의원들의 결정권이 어떻게 선거를 해도 독재자의 결정권을 넘을 수 없도록 개헌을 해 버리기도 했다.

우리는 그 모든 시도와 좌절과 도전에 기대어 마침내 국회에서의 난동을 거의 보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이르렀다. 국회의원들이 총회에 불참하거나, 정당 대표자들끼리 회담이나 대화를 하거나, 원내에서 장시간의 필리버스터를 하거나, 릴레이 단식을 하는 것 같은, 어떻게든 물리적 의사 방해가 아닌 방법으로 민의를 모으고 결정을 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국회 선진화법은 단지 날치기나 몸싸움이 ‘후진적’이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날치기나 몸싸움이 비민주적이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그런 방법 없이도 의사 결정이 가능한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신뢰하고, 민주주의 국가를 구축하고 수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국회 선진화법은 도입 당시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었지만 지금의 우리는 마침내 이루어낸 성취다. 국회 기물을 파손하거나 서로를 밀치거나 문 앞을 가로막고 행패를 부리지 않고도 민주적 결정에 이를 수 있으리라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약속이고 선언이다.

자유한국당은 ‘독재 타도’니 ‘헌법 수호’니 하는 문구를 들고 국회를 점거했다.

독재 타도라니 우습지도 않다. 우리나라는 독재를 경험했다. ‘독재 타도’는 정말로 무거운, 그 네 글자마다 열사들의 피와 수많은 국민의 상처가 묻어 있는 구호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피웅덩이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몇 년 전에도, 우리는 독재국가로 역진(逆進)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추운 겨울 내내 촛불을 들어야 했다.

헌법 수호는 국회의원의 의무다. 우리나라는 헌법이 지켜지지 않는 시대를 경험했다. 현행 헌법은 국민이 뽑은 대표자인 국회의원들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국회를 적극적으로 보호한다. 이는 국회의원 개인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국회의원을 지지한 국민이, 바로 우리들이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은 국회의원들에게 비폭력적인 의사 진행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부여했다. 헌법 수호는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와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수호하라는 뜻이다.

독재를 타도하고 헌법을 수호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말한다. 당신들은, 국회의원들은, 오로지 우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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