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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조장풍은 어디 있나

입력
2019.04.29 04:40
수정
2019.04.29 14:5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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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MBC 홈페이지 캡처
TV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MBC 홈페이지 캡처

산업재해를 당해도 병원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지각을 하거나 배달이 늦으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런 청소년 라이더(오토바이 배달)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받아야 할 수수료(임금)마저 떼일 처지여서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배달주문 콜(call)을 주는 배달대행업체 사장으로부터 체불된 돈을 받아낼 수 있을까. ‘사장님’은 완강하게 발뺌한다. 자신은 음식점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라이더들에게 전달하고 배달수수료를 나눠 갖는 대행업자일 뿐이고 라이더들은 개인사업자(특수고용노동자)라 자신이 줘야할 밀린 임금은 없단다. 청소년들의 말문이 막히려는 찰나, “사장님도 힘든 것 아는데 애들 돈 떼먹으면 안되지 않겠느냐?”며 나지막이 꾸짖는 이가 등장한다. 사장과 라이더 청소년들이 실질적인 고용관계라는 사실을 조목조목 밝혀낸 그는 결국 ‘사장님’으로부터 밀린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TV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조진갑(일명ㆍ조장풍)은 유도선수 출신의 전직 교사.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두둔하다 분쟁에 휘말려 교단을 떠났다가 이후 근로감독관으로 변신해 ‘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인물이다. 근로감독관이 주인공인 국내 최초의 드라마인만큼 만연한 아르바이트생 체불, 정보기술(IT) 하청업체의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성희롱과 언어폭력 등 직장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노동현실이 묘사된다.

영웅적 행동으로 박수갈채를 받는 조장풍과 달리, 체불ㆍ성희롱 등으로 감독관을 만나본 노동자들은 일 처리에 대한 불만이 적잖다. 알바노조가 고용노동부에 진정해 본 경험이 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어보니(2016년) 100명 중 99명이 ‘감독관에게 불이익을 당했다’는 답을 했다. 노사문제의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감독관을 사용자 편으로 느끼는 노동자들도 꽤 있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제보를 취합해 정리한 자료(2018년)에 따르면, 진정인들은 정보를 회사 측에 넘겨주거나 합의를 종용하는 감독관들에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밀린 돈을 빨리 받고 싶어하는 체불 피해자들의 주관적 응답임을 감안해도 감독관들에 대한 호감도는 꽤 낮아 보인다.

감독관들이 다른 정부부처의 공무원들보다 유난히 불성실해서 이런 반응이 나온 건 아닐 테다. 그들의 과중한 업무와 부족한 인력상황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고용부에 따르면 전국 사업장은 202만개소, 임금근로자는 1,774만명(2017년)이다. 지난해말 현재 감독관이 1,311명이므로 단순하게 계산해 감독관 한 명이 1,500개 이상의 사업장, 1만3,000명이 넘는 근로자를 맡는다는 얘기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 들어와 인력 충원으로 사정이 나아진 게 이렇다. 20년 이상 감독관으로 일했던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노동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주휴수당, 초과근로수당, 근로계약서 교부 등 민원인들의 요구사항이 늘어났다”면서 “합의를 강요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개별사건을 신속히 종결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고 털어놓았다.

근로감독관 한 명이 1주일에 평균 13시간 초과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원인이 조장풍 같은 감독관을 만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감독관 개인의 의협심에 기댈 수도, 무턱대고 인력을 몇천명씩 늘리는 것도 현실적 대안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체불임금액은 일본의 10배에 가깝고 감독관 업무의 70% 이상이 체불 사건이다. 아무리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라고 해도, 체불은 ‘범죄’라는 인식만 분명히 갖고 있다면 감독관의 업무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어느 노동운동가의 표현처럼 ‘일터의 주치의’ 역할을 하는 감독관을 더 많이 만나보려면 노동법에 대한 학교교육부터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이왕구 정책사회부장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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