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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생존학생 모임 대표인 장애진씨와 세월호 선체. 연합뉴스.

기자로 오래 산 사람들은 자주 착각에 빠진다. “내가 모르는 중요한 문제란 세상에 없다”고 믿어버린다. “온갖 사회 문제에 안테나를 세우고 사는 나야말로 민심의 척도이자 공감의 화신이지!”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는 것도 알고 모르는 것도 안다고 뇌가 오류를 일으키곤 한다.

얼마 전 나온 책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창비)를 읽으면서 오류 목록을 추가했다. 책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57명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세월호의 고통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며 책을 펼쳤지만, 대단한 착각이었다. 나는 보고 싶은 고통만 보는 사람이었다. ‘생존자의 고통’은 제대로 헤아린 적 없다. ‘없는 고통’ 취급했는지도 모르겠다. ‘살았으면 그래도 된 거 아닌가. 죽은 사람도 있는데.’ 아마도 그런 마음으로 기억을 편집했을 거다.

그게 엄청난 폭력이었다는 걸 단원고 생존학생 부모들의 책 속 육성을 듣고 알았다. 세월호에서 살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생존자들의 지난 5년은 지옥이었다. 그들을 유가족은 원망했고, 세상은 외면했다. ‘살아있는 죄’를 추궁 당한 생존자들은 스스로에게 죄를 물었다. 이름을 지우고 숨어 사는 동안 자해하거나 자살을 시도한 생존자가 여럿이다. “학교 앞으로 애를 데리러 갔다가 유가족 엄마들을 만난 거예요. 순간 철렁하더라고요. 그걸 우리 애도 느꼈는지 미안하다는 거예요. ‘엄마, 하필 이 자리에 내가 있어서 미안해요.’”(생존자 엄마 문석연씨) 살아남아서 미안한 어린 마음을 나는 짐작도 할 수 없다.

자연재해에서 목숨을 건지는 건 축복이고, 기껍게 목숨을 건 모험에서 살아남는 건 즐거움이라 부를 수 있겠다. 누군가의 탐욕과 무능이 초래한 사회적 참사에서 살아남는 건 지독한 억울함이다. 아프지 않아도 되는 아픔을 겪는 울분, 죽지 않아도 되는 죽음을 목격한 죄책감. 그건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상처가 아니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 웃으며 돌아왔네”라는 노래 가사는 진실일 수 없다.

세월호 생존자들을 위로하고 치료하는 건 참사를 막지 못한 사회의 마지막 책임이다. 나를 포함한 사회는 그러나 끝까지 비겁하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알아서 감당하라”로 바꾸고는 성급하게 미래와 치유를 말한다. 끝내 마음을 열어 생존자들을 품은 건 유가족들이다. “우리는 만나면 서로 아픈 게 보여요. 유가족분들이 나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우리는 가슴에 묻으면 되는데 당신들이 걱정이다’고.”(생존자 아빠 박윤수씨)

사회적 참사는 희생자의 숫자로 평가되고 필요할 때만 기억된다. 생존자는 간편하게 지워진다.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 유지환씨를 2001년 인터뷰했다. “살아나오자 마자 기업체 5,6곳에서 대졸 사원으로 대우해 입사시켜 주겠다느니 영화도 찍고 CF도 찍자느니 했어요. 아무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 그의 차가운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세월호는 그저 배 이름이 아니다. 304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썩은 사회의 이름이기도 하다. 나와 당신은 세월호의 또 다른 생존자다. 운이 좋아 그날의 세월호에 오르지 않았을 뿐, 누구라도 다음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고통을 해쳐먹고 우려먹는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너희들에 대한 그리움은 약간의 죄책감과 닮아있다고 생각해. 나는 매일 보내지 못하는 편지를 쓰고 용서받을 수 없는 사과를 해. 용서해 줄, 괜찮다고 말해 줄 너희가 없으니 나는 너희의 인생을 살아가며 죄를 갚아 나갈게. 용서를 바라지는 않을게. 진실이 밝혀지는 날이면, 너희에게 사과할 기회를 줄래?” 생존학생 모임 대표 장애진씨가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에서 읽은 편지다. 피해자들에게 죄책감까지 떠넘기는 사회는 과연 정상인가. 나는 아주 많이 부끄럽다.

최문선 문화부 순수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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