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이윤이 앞서는 한, 죽음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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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보다 이윤이 앞서는 한, 죽음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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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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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참사 육성 기록, ‘나, 조선소 노동자’

2017년 5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사고 참사를 겪은 조선업 노동자들이 하청업체 파견 제도 폐지를 촉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다.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제공

324명. 2007년부터 2017년까지 대한민국 조선업에 종사하면서 업무상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숫자다. 한 달에 두 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 나갔다. 지난해 9월 발표된 조선업중대재해 사고 관련 국민참여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이다. 산업안전공단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조선업의 재해율은 전체 산업 평균의 1.7배였고, 사망한 노동자의 수도 다른 산업보다 2배나 많았다. 세계 선박 수주량 1위를 자랑하며 한국의 수출 효자업종으로 승승장구하던 조선업을 지탱한 건 노동자들의 죽음이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노동자가 ‘같은 처지’였던 건 아니다. 사망자 324명 중 257명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였다. 조선업이 흥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대한민국 수출 역군으로 추앙 받을 때도, 조선업이 망해 정리해고 바람이 몰아칠 때도 셈조차 되지 않던 이들이다.

‘나, 조선소 노동자’는 조선업을 밑바닥에서부터 떠받쳐 왔으나 끝내 투명인간 취급을 받은 하청 노동자 9명의 목소리로 쓴 구술 기록집이다. 이들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난 계기 역시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마틴링게 프로젝트 건조현장에서 발생한 크레인 충돌ㆍ추락 사고.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친 참사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육성이 책에 담겼다. 이들은 사고 이후 불면증을 비롯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이 극심해 죽은 것과 진배 없는 삶을 간신히 살아내는 중이다.

책은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이 사고 목격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시작한 상담 인터뷰 기록을 추린 것이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9명은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기업ㆍ정부ㆍ관료 조직을 고발하기 위해 증언에 나섰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꿈꾼 20대 청년부터, 집안 살림에 한 푼이라도 더 보태려던 50대 중년 여성, 사업 실패를 만회하고자 닥치는 대로 일했던 평범한 가장… 사연은 저마다 달랐지만 조선업의 도시 ‘울산’에서 이들이 불린 이름은 하나였다. 원청 아래 하청, 그 아래 다시 하청에 소속돼 있는 ‘물류팀 혹은 돌관(突貫)’. 선적 납기 기한을 맞추기 위해 집중 투입하는 비상 노동자들이었다. 소속된 회사가 있었지만, 회사 이름은 매번 바뀌었다.

2017년 5월 1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타워크레인 충돌 사고 현장. 크레인의 와이어가 꺾여 구조물로 추락하면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당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선업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소모품처럼 대했다. 위험하고 급한 작업일수록 초보자에게 떠맡기면서 제대로 일을 가르쳐주는 법이 없었다. 숙련공이 되면 시급을 올려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누가 다치거나 죽어도 기업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을 ‘부품처럼’ 갈아 끼워 넣으면 그만이었다. ‘은바가지들(흰색 안전모를 쓴 관리자들을 부르는 은어)’은 말로만 안전을 외쳤다. 화장실도 맘대로 갈 수 없을 정도의 열악한 근무환경이었지만, 그만 둘 수 없었던 건 가난 때문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택배 일보다 시급이 높으니 감내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날 사고 이후 이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노동자라면 마땅히 쉬어야 한다고 법이 정한 유급휴일에도, ‘빽도 없고 정직원도 아닌’ 1,623명의 직원들은 반강제로 출근했다. 오후 2시 52분. 3시 휴게 시간을 8분 앞두고 3층 화장실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찰나, 크레인 2대가 “쿵”하고 부딪쳤고 튕겨 나온 와이어가 동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당연히 있어야 했던 안전관리사도, 신호수도 보이지 않았다. 안전 규칙을 어겨서 발생한 ‘인재’였다.

사고 이후 이들의 몸과 마음은 곪아갔다. 사고 장면이 자꾸 떠올라 잠들지 못했고, 외출도 하지 못했다. 원래의 직장으로 돌아갈 수도, 새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다. 산업 재해로 인정받는 과정은 그 자체로 ‘2차 피해’였다. 근로복지공단 공무원들은 “나랏돈 받으려고 일부러 꾀병 부리는 것 아니냐”고 막말했다. ‘차라리 몸을 다쳐 불구가 되는 게 나았을까’라는 마음을 품을 정도로 괴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나, 조선소 노동자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코난북스 발행ㆍ288쪽ㆍ1만5,000원

이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행태에 가장 큰 분노와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원청인 삼성중공업은 언론 앞에서만 머리를 숙였다. 유가족에게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고, 책임자들은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다. 정부도 사고 진상규명에 나서기는커녕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데는 손 놓고 있다.

“사고를 당해보니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들을 것 같아요. 그래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사람이 살다 보면 사고도 나고 실수도 할 수 있죠. 그래도 좀 덜 나게, 큰 사고 날 것을 작은 사고로 줄일 수 있게 자꾸 뭐라도, 누구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김종배씨의 말이다.

9명의 하청 노동자들은 경고한다. 우리에게 목숨보다 이윤이 앞서는 사회 구조와 의식을 바로잡지 않는 한, 2017년 노동절의 참사는 똑같이 반복될 수 있다고. 그날 이후로도 김용균씨를 비롯해 힘 없는 노동자들이 속절없이 목숨을 잃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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