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기각 뒤 첫 소환조사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수수 및 성범죄 의혹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검찰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며 수사팀과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개인비리를 꼬투리 삼아 김 전 차관 사건을 압박해 가겠다는 검찰의 별건수사 전략이 변하지 않는 한, 김 전 차관에 대한 진술을 일절 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윤씨는 23일 서울동부지검에 마련된 김학의 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에 출석, “조사에 응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 채 모든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차관 사건과 관련 없는 개인비리 혐의로 자신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에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수사단은 윤씨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자 출석 2시간 만에 그를 귀가시켰다. 체포 상태에서 진행된 17일과 18일 조사 때도 수사단은 윤씨에게 유의미한 진술을 얻어내지 못했다.
윤씨는 이번 수사가 수사권을 남용한 별건 수사라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앞서 수사단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공갈 등 5개 혐의로 윤씨를 전격 체포했는데 사업가 김모씨 관련 수사 청탁 혐의를 제외한 4개는 모두 김 전 차관과 무관했다. 이밖에 동인레져 골프장 개발 인허가 관련 사기 혐의와 건설업체 D사 관련 사기 혐의는 민사 상 책임을 다투는 사건이라는 게 윤씨 측 주장이다. 윤씨 변호인은 “본류 사건과 무관한 사건으로 일단 구속하고, 김 전 차관 관련 혐의를 불게 하려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법원도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이례적으로 ‘수사개시 시기 및 경위’ ‘범죄혐의의 내용과 성격’을 문제 삼았다.
윤씨는 한 발 더 나아가 검찰이 불구속 수사를 보장한다면 김 전 차관 관련 내용을 진술할 수도 있다는 식의 분위기를 풍기며 검찰과 ‘밀당’을 벌이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윤씨 변호인은 이날 취재진을 만나 “윤씨의 신병을 더 이상 문제삼지 않으면 모든 것에 협조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검찰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검찰로서는 ‘압박’과 ‘회유’ 사이서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씨의 개인 비리를 통해 김 전 차관 사건의 본류로 접근하려던 우회 전략이 영장 기각으로 무산되면서 수사단의 선택지는 대폭 줄었다. 한 차례 체포했다가 석방된 피의자라는 점에서 새로운 증거가 확보되지 않는 이상 영장 재청구엔 신중할 수밖에 없다. 자칫 영장이 또 기각될 경우 김 전 차관 사건 수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에 따라 수사단이 성범죄 관련 혐의에서 증거를 보강해 김 전 차관을 압박하려는 쪽으로 작전을 바꾼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일부 사실에서 공소시효 문제가 있긴 하지만, ‘별장 동영상’ 등 물증이나 피해자 진술이 있는 만큼 사실관계 규명이 더 용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단은 자신이 ‘별장 동영상’ 속 인물이라고 주장해 온 이모씨를 이번 주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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