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로드맵 입장 담은 친서인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공개 메시지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직접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한 사실이 21일 확인 됐다. 이 메시지는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담은, ‘대통령 친서’ 형식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어깨에 짊어질 짐을 더한 셈이다. 강경 일변도인 북미의 틈바구니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수석 협상가로서 운신의 폭이 날로 좁아지고 잇는 탓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전한) 메시지를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미 CNN 방송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을 당부한 메시지가 문 대통령 손에 있다”는 보도를 인정한 것이다.
CNN은 앞선 19일(현지시간) 폴라 핸콕 서울 지사장발 보도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와 관련해 “지금의 대북 기조와 관련한 중요한 내용과 북미 정상회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그간 친서를 주고 받은 사실을 들어 각별한 관계임을 강조해 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가 친서(親書) 형식 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바란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빈발이 아니라면,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한 최소한의 입장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이번 메시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달됐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미는 당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최종 상태(엔드 스테이트) △정상 간의 ‘톱다운’(하향식) 방식 협상 유지에는 큰 이견이 없다는 원칙적 사실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북미 간의 대화가 시급하다는 점에는 보조를 맞췄다. 문 대통령은 “조만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계획”을 전하며 “차기 북미 정상회담이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또 다른 이정표가 되도록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김 위원장의 얘기를 들어보고 가급적 빨리 알려달라”고 화답했다.
북러 정상회담 개최가 제4차 남북 정상회담 또는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여론 환기 차원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북한은 앞서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을 방문하는 등 전통적인 우방국가와의 친교를 강화하는 행보를 취해 왔다.
하지만 ‘가시적 성과’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 국면만큼은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한 메신저 역할이 문 대통령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크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제 틀을 유지한다는 원칙 하에 남북 접촉에서 ‘영변 플러스 알파(α)’로 상징되는 북핵 관련 시설 폐기에 대한 포괄적 합의와 관련해 최소한의 접점을 도출해내야 하는 사실상의 외길 수순인 탓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북한이 전향적으로 자세를 취해주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이 움직일 수 있는 틈새가 크지 않다”며 “트럼프 대통령도 문 대통령을 가혹하게 내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 운전자로서 사고무친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CNN도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스몰딜이든 빅딜이든, 좋든 나쁘든 무엇인가가 일어나야 하며 과정이 지속 가능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다면 비핵화 대화를 이어갈 모멘텀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다고 본다”고 우려를 전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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