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리셤의 작품에 등장하는 멋진 공익변호사들이나 마이클 코넬리의 드문드문 정의로운 변호사 미키 할러 등은 모두, 클래런스 대로(Clarence Darrow, 1857.4.18~1938.3.13)라는 걸출한 인권 변호사의 좋은 DNA를 물려받은 이들이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의 배경은 1936년 앨라배마지만, 대로가 변론을 맡은 ‘스위트 살인사건’은 1925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가 배경이다. 흑인 내과의사 오시언 스위트(Ossian Sweet)가 백인 거주지역에 집을 장만하자 백인 주민들이 그를 내쫓기 위해 위협과 총격을 일삼았고, 그걸 방어하느라 스위트의 가족과 친구들이 쏜 총에 백인 한 명이 숨진 사건이었다. 전원 백인인 배심원단을 향해 인종 편견과 차별을 고발하며 대로가 펼친 최후 변론은 그대로 영화에 갖다 써도 좋을 명변론이었다. “피고인들이 만일 백인이고 그들이 유색인종 폭도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을 쏴 사람을 숨지게 했다면, 그들은 체포되지도 기소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내 의뢰인들은 살인을 저질러 기소된 게 아니라 흑인이어서 기소된 것입니다.” 그는 배심원 ‘의견 불일치(hung jury)’ 평결을 얻어냈다.
대로의 아버지는 열렬한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우상 숭배를 경멸한 종교적 자유주의자여서, 고향 오하이오주 킨스먼 주민들은 그를 ‘마을의 불신자(village infidel)’라 불렀다고 한다. 대로는 아버지의 그 정신까지 온전히 물려받았다. 미시간대 로스쿨을 나와 기업 변호사에서 노동변호사로, 나중엔 형사전문 변호사로 활동했지만 이력을 지탱한 정신은 개인의 인권과 자유주의였다. 유희와 완전범죄 실험을 위해 14세 소년을 납치ㆍ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사형선고가 확실시되던 시카고의 부유층 청년 둘(레오폴드-로엡 사건)의 변호를 맡아, 당시 기준으로 그들이 형사 미성년자이고 죄를 자백했으며 사형제와 보복성 징벌이 부당하다는 점을 주장해 종신형(+99년)을 얻어내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물론 1925년의 ‘스코프스 재판’이다. 그는 테네시주법(버틀러법)에 반해 진화론을 가르쳐 기소된 공립고교 교사 존 스코프스의 변호를 맡아, 당대 종교ㆍ정치권력에 맞서 과학의 진지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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