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 올레 7코스. 서귀포=최흥수기자

봄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제주의 봄이 먼저 떠오르고 올레가 함께 다가온다. 확실히 올레는 아름답다. 제주도 자체가 워낙 아름다운데 그 가운데서 가려 뽑은 듯 모두가 뛰어난 풍광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길을 모으기도 힘들 것이다. 모든 코스가 빼어나게 아름답다. 때로는 너무 아름다워서 정작 생각할 여유조차 없고, 그 길 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까지 잊고 지나기 쉬운 게 함정일 만큼. 올레는 이제 다른 나라에 수출(?)되는 상품이기도 하다.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봄을 걸어볼 수 있는 올레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간다.

올레는 경주도 아니고 달리기도 아니다. 올레는 산책이다. 산책은 몸의 사유고, 사유는 머리의 산책이다. 올레의 치명적 단점(?)은 풍광이 너무 뛰어나 거기에만 눈길과 마음이 쏠리기 쉽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작 생각할 시간을 놓친다면 그건 올레를 누리는 태도가 아니고 예의도 아니다. 풍광의 속살은 나의 생각과 삶이고, 그것을 내준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이다. 그걸 읽어내는 힘은 사색에서 나온다. 사색의 길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그렇다고 주변의 모습들에 눈길 한 번 주지 못하는 몰입도 아니다. 자유롭고 심지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생각과 물음들이 꼬리를 문다. 그게 사색의 길이 주는 매력이다. 생각이 얹히면 사소한 풍경들도 내 생각과 삶의 속살로 들어온다. 나지막한 돌담으로 길과의 경계를 시각적으로만 설정한 듯한 밭의 작물들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올레길을 마음껏 혼자 누린다는 포만감이 그 속살을 웅숭깊게 해준다. 나는 누군가가 ‘내준’ 길을 걷고 있음을 기억한다. 그게 올레의 속살이다. 그걸 읽어내는 게 진짜 올레의 값이고 가치다.

모르는 외지인들에게 자신들의 골목을 내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골목은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이 혼재된 공간이다. 한 동네 사는 사람들은 파자마 바람으로도 잠깐 그 골목 오가도 서로 신경 쓸 일 없다. 그런데 거기에 낯선 외지인이 드나들면 얼마나 불편할까. 골목은 통과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 동네 사람들이 소통하는 매우 사적인 공적 공간이다. 그 공간을 기꺼이 여행자들에게 내준 사람들의 마음이 살갑고 고맙다.

골목길만 내준 게 아니다. 자신들의 산책로이며 노동의 현장으로 가는 길목인 숲길도 내준다. 심지어 가는 길 잠깐 쉬며 숨 고르라고 커피를 마시라고 마을 청년들이 내 준 배려도 있다. 올레 13코스는 그래서 더 따뜻하다. 아름다운 ‘잣길’은 또 어떤가. 화산 폭발로 쏟아지고 흘러내린 돌무더기들을 걷어내 밭으로 만들면서 마을을 이어주는 통로로 삼았던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어떤 건 허물어지고 다른 건 사라졌다. 그것을 마을사람들이 아름답게 되살려서 올레13코스에 편입시켰단다. 동네 길 내준 것으로도 모자라 그 길 찾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 누리게 해주려 만들어낸 선물이다. 선물을 받을 때 무덤덤할 수 없다. 고맙고 살갑다. 그래서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 아름다운 길이다. 적당한 곡선이 이어지는 이 길은 그냥 되살려낸 길이 아니라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아져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길이다. 그 길에서는 일부러 더 속도를 줄인다. 길에 맞춰 굽이굽이 이리저리 방향을 틀면서 내 삶에도 생각에도 그런 적당한 곡선의 길의 필요성을 느낀다.

제주도청이나 제주공항공사에 부탁하고 싶다. 제주공항에 멋진 켈리그래프로 쓴 게시판 하나 달아주시길. “올레는 그 길을 내준 사람들의 마음이 이어진 길입니다. 그 마음 나누고 담아가시길 빕니다.” 국제공항답게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도 병기하면 더 좋을 것이다. 그 문장을 본 사람들은 올레에서 만난 제주 사람들에게 그 길 내준 마음에 고마움을 표하며 인사할 것이고 그 인사에 길 내준 사람은 뿌듯할 것이다. 그런 인사조차 없으니 올레에 대해 정작 제주 사람들이 귀찮고 시큰둥해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 중국, 일본의 젊은이들이 함께 그 길을 걸으며 공존과 평화에 대해 가슴 열고 교환하는 지속적인 모임은 멀리는 동아시아 평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올레의 자산은 그렇게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

풍경은 늘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익숙한 공간이건 낯선 장소건 지나는 바람과 사람들이 풍경을 조금 변하게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모습 그대로 서있다. 내가 그 풍경을 구경만 할 때는 그것은 그저 하나의 풍경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통하고 생각을 함께 하면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올레는 그래서 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웅숭깊은 길이다. 마음을 얻는 길, 그것은 마음을 내준 마을 사람들의 그윽한 베풂이 주는 선물이다. 눈에는 잠시 머물지만 가슴에는 오래 머무는 곳이 있다. 올레가 그런 곳이다. 제주공항에서 올레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담은 그런 메시지를 만나고 싶다. 김영갑의 극상의 사진과 함께. 제주공항에서 그런 감동을 만나고 싶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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