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예장동 문학의 집에서 열린 제6회 들꽃영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들꽃영화상 제공

“정말 욕심 났어요. 꼭 받고 싶은 상이었습니다.” 배우 이솜이 우렁차게 외치더니 쑥스러운 듯이 ‘까르르’ 자지러졌다. 객석에서 ‘와하하’ 웃음이 터지며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이솜의 품에선 제6회 들꽃영화상 여우주연상 트로피가 빛나고 있었다. 레드카펫도 없고 좌석도 모자란 비좁은 공간에 변변한 장식도 없는 소박한 무대였지만, 이솜은 그 어떤 시상식보다 기쁜 마음으로 즐겼다.

“지금까지 이런 영화제는 없었다, 이것은 시상식인가 축제인가.” 시상자로 무대에 선 배우 류승룡은 처음 찾은 들꽃영화상에 흠뻑 반한 얼굴이었다. 영화 ‘극한직업’의 명대사를 응용한 그의 유쾌한 입담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류승룡은 시상식을 마치고 영화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조만간 독립영화에 출연해 들꽃영화상 시상식에 후보로 초대받고 상도 꼭 받고 싶다”고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국내 유일 저예산ㆍ독립영화 시상식인 들꽃영화상이 12일 오후 서울 예장동 문학의 집에서 여섯 번째 축제를 열었다. 시상이 이뤄지는 14개 부문 후보자들을 비롯해 독립영화를 응원하는 배우와 스태프, 평론가, 영화 제작사, 수입사, 배급사 관계자 등 영화인 30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귀빈석과 객석이 따로 없어 모두가 허물 없이 편하게 어울렸다. 심지어 후보자도 객석 뒤편에 옹기종기 서서 시상식을 관람하기도 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수상자 호명에 깜짝 놀라 인파를 헤치고 무대에 오르는 모습도 자주 포착됐다.

지난해까지는 부상으로 쌀과 협찬 물품이 주어졌지만 올해 처음으로 소액이지만 상금이 생겼다. 전년도 수상자 자격으로 시상을 한 이들은 “올해 수상자들이 무척 부럽다”며 “쌀은 아주 잘 먹었다”고 주최 측에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다른 영화제 시상식도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였으면 좋겠다”는 류승룡의 얘기 그대로였다.

분위기는 더 없이 흥겨웠지만, 수상의 의미는 진중하고 무거웠다. 자본의 쏠림으로 나날이 척박해지는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독립영화들에게 들꽃영화상은 단순한 상 이상이다. 수상 여부를 떠나 시상식의 존재 자체가 곧 독립영화에 대한 격려이자 응원이고 지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들꽃 같은 생명력으로 시대를 비추고 예술적 성취를 이뤄낸 독립영화들이 고루 주목받았다.

제6회 들꽃영화상 대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 시네마 달 제공

최고 영예인 대상은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점’이 차지했다. 2009년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이 사망한 용산 참사 이후 수년간 수감됐던 철거민 생존자들의 현재를 담아내며 용산 참사의 진실을 추적한 작품이다. 인권단체이자 창작집단인 연분홍치마가 제작하고 김일란ㆍ이혁상 감독이 공동연출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른 김일란 감독은 “올해 연분홍치마가 15주년인데 그동안 애썼다는 격려 같아 기쁘다”고 말했고, 이혁상 감독은 “이 영화를 가능하게 했던 용산 참사 생존자들께 감사하다”고 밝혔다.

다큐멘터리 감독상은 ‘천당의 밤과 안개’ 정성일 감독이, 극영화 감독상은 ‘소공녀’ 전고운 감독이 수상했다. ‘소공녀’는 이솜까지 여우주연상을 받아 더 큰 기쁨을 누렸다. 남우주연상은 ‘살아남은 아이’에서 호연을 펼친 성유빈에게 돌아갔다. 성유빈은 “이제 스무살이 됐다”며 “올해부터 성인 연기자로 더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살아남은 아이’는 신동석 감독이 시나리오상을, 제정주 프로듀서가 프로듀서상까지 수상하며 3관왕에 올랐다. 올해 후보작 중 최다 수상이다.

생애 한 번밖에 받을 수 없어서 더욱 뜻 깊은 신인감독상과 신인배우상에는 각각 ‘죄 많은 소녀’의 김의석 감독과 ‘어른도감’의 이재인이 호명됐다. 조연상은 ‘풀잎들’의 김새벽이 차지했다. 촬영상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던 ‘뷰티풀 데이즈’의 김종선 촬영감독이 받았고, 음악상은 ‘눈꺼풀’의 정채웅 음악감독이 수상했다. 올해 처음 신설된 민들레상(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상)은 여성의 월경권을 발랄하게 그려낸 ‘피의 연대기’의 김보람 감독에게 주어졌다.

지난해 20주년을 맞은 독립영화 제작ㆍ배급사 인디스토리의 곽용수 대표가 공로상에 선정됐다. 곽 대표는 “선배들도 있는데 상을 받아 쑥스럽다”면서도 “독립영화 환경이 나아져서 인디스토리가 들꽃영화상 스폰서가 되는 그날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

들꽃영화상은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이 집행위원장을 맡고 영화평론가 오동진이 운영위원장을 맡아 지난 2014년 출범했다. 미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독립영화 시상식인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독립영화 시상식을 지향한다. 순제작비 10억원 미만의 저예산ㆍ독립영화를 대상으로 하며 매해 4월 열린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수상자(작)

▦ 대상=공동정범(김일란ㆍ이혁상)

▦ 극영화 감독상=전고운(소공녀)

▦ 다큐멘터리 감독상=정성일(천당의 밤과 안개)

▦ 여우주연상=이솜(소공녀)

▦ 남우주연상=성유빈(살아남은 아이)

▦ 신인감독상=김의석(죄 많은 소녀)

▦ 신인배우상=이재인(어른도감)

▦ 조연상=김새벽(풀잎들)

▦ 시나리오상=신동석(살아남은 아이)

▦ 프로듀서상=제정주(살아남은 아이)

▦ 촬영상=김종선(뷰티풀 데이즈)

▦ 음악상=정채웅(눈꺼풀)

▦ 주목할 만한 다큐상-민들레상=김보람(피의 연대기)

▦ 공로상=(주)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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