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 “韓에 제재 폐지 계속 요구할 것”
일본 정부는 12일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福島)현을 포함한 주변 8개현의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인정한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결정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과의 분쟁에서 승소해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수입규제 철폐를 요구하려던 전략에 수정이 불가피해진 탓이다. 이에 “WTO가 자국 농수산물에 대한 안전성을 부인한 것은 아니다”며 논란 확산을 막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일본) 정부의 주장이 인정받지 못한 것은 진정으로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모든 제재조치 폐지를 요구해 가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양국간 협의를 통해 조치의 철폐ㆍ완화를 요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WTO가 일본산 식품은 과학적으로 안전하고 한국의 안전기준을 달성했다는 1심의 판단을 취소한 것은 아니다”며 “일본이 패소했다는 지적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WTO 판정으로 자국 수산물의 안전성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에 농수산물 수출을 확대하려던 일본 정부에 타격이 클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날 오전 수산청 장관과 외무성 경제국장이 총리관저를 찾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당초 승소를 기대했던 일본 정부로선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외무성은 WTO 결정이 나온 지 1시간여 만인 이날 새벽 1시16분에 고노 다로(河野太郎) 장관의 담화를 발표했다. 고노 장관은 “진정으로 유감”이라며 “상소기구 보고서 내용을 분석하고 향후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는 여당인 자민당에서 “일본이 승소할 것이라고 방심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고, 고노 장관은 “왜 이런 판단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노 장관은 이날 이임인사 차 외무성을 찾은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에게는 한국 측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 철폐 문제를 논의할 양자간 협의를 요청했다. 이 대사는 WTO 결정을 존중하면서 일본 측의 한국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듯 일본 언론들도 허둥대는 반응을 보였다. 산케이(産經)신문은 전날 인터넷판 기사에서 “WTO의 상소기구가 수입재개 판단을 표시해 일본의 승소가 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자, 일본 언론들은 “일본이 무역분쟁에서 역전 패소했다”, “WTO 상소기구가 1심의 판단을 뒤집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일본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이후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위한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을 상대로 2015년 5월 WTO에 제소했다. 원전사고 직후 한 때 54개 국가ㆍ지역에서 일본산 농수산물에 대한 수입규제가 실시됐으며 점차 완화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중국, 대만 등 23개 국가ㆍ지역에서 수입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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