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1박 3일’ 미국 방문… 북미 협상 돌파구 마련 급박 판단
트럼프 대북 대화 의지 확인 후 한미→남북→북미 회담 성사 노려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 조율된 의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 불참까지 감내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러 10일 방미 길에 오른 것은,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동력이 소진돼 가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 그만큼 급박하다는 판단에서라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문 대통령의 목표는 3차 북미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이다. 미 조야에 협상 회의론이 팽배하고 압박 일변도 대북 정책에 힘이 실리고 있는 터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비핵화 대화 재개 의지와 정상 간 톱다운(하향식) 해법에 대한 신뢰를 다시 확인한다면 실패한 회담이라는 혹평은 면할 수 있다. 더불어 확인돼야 하는 건 긴밀한 한미 공조 관계다. 외교 소식통은 “문 대통령은 한미가 ‘원팀’(one team)임을 전제로 정상끼리 대북 견인 전략을 논의하러 가는 것”이라고 했다. 전날 청와대 관계자가 “제재의 틀이 유지돼야 한다”고 한 것도 미국의 방향과 엇나갈 생각이 한국에게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하노이 담판 당시 드러난 북미 간 현격한 입장 차이를 방치했다가는 양측이 재회해도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북한이 바라는 비핵화ㆍ보상 해법은 ‘단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이다. 현 북미 간 신뢰 수준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에 먼저 합의하고 단계를 밟아가며 약속을 실천해야 한다는 게 북한 주장이다. 그 밑바닥에는 자기들이 먼저 비핵화 조치를 하고 나면 미국이 보상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라는 불신이 깔려 있다.
미국은 반대다. 북한이 보상만 챙긴 뒤 비핵화를 중도에 멈춰버리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그래서 목표와 로드맵에 우선 합의한 다음 첫발도 크게 떼자는 게 미측 제안이다. ‘포괄적 합의, 단번 이행’론이다. 하노이에서 제시된 영변 핵 시설 폐기 정도의 비핵화 조치는 북한이 바라는 핵심 유엔 제재들을 풀어주기에 턱없이 모자란 만큼 미사일까지 포함된 핵 무기 생산 시설 전부를 불능화ㆍ폐기하고 추가로 70기가량의 완제품 핵 무기 중 일부를 반출ㆍ해체한다면 제재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의 구상은 ‘연속적 조기 수확’이다. 일단 북미가 비핵화 개념부터 공유하도록 유도한 뒤 비핵화 단계를 최소화하되 북한의 비핵화 이행 동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부분 제재 해제 같은 보상을 비핵화 완료 전에라도 견인책 차원에서 제공하자는 아이디어다.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을 한두 차례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관철시키는 일이 만만치 않다. 북한이 제재 해제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알아챈 미국에게는 양보해야 할 유인이 사실상 없다. 북한을 상대로는 불가역적 비핵화 상태가 가시화해야 비로소 제재 해제가 가능해진다는 국제사회 일반의 인식을 이해시켜야 한다. 하지만 줄곧 ‘60% 비핵화에는 60% 제재 해제’ 식 등가(等價) 교환을 고집해 온 북한한테서 큰 보폭의 초기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는 게 쉽지 않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스냅백(위반 행위가 있으면 복원하는 조건으로 제재를 해제하는 조치)이 들어간 새 결의를 유엔이 채택하려면 위반 여부 판단 때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비핵화 이행 약속이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북한이 그걸 수용할지 의문”이라며 “남북한을 별개 나라로 여기는 국제사회가 민족 내부 거래 특수성을 인정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같은 남북 경제협력을 포괄적 제재 예외로 인정해주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미→남북(4월 말)→북미(5~6월)’ 순으로 정상회담이 이뤄졌으면 하는 게 청와대의 바람이지만 미국이 제재 만능론을 굽히지 않고 북한이 버티기에 들어간 듯한 지금 형편을 감안할 때 구상을 실현하기는 간단치 않으리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 관측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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