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50> 3,650m 가장 높이 있는 수도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케이블카가 도심 아래 위를 왕복하고 있다.

남미에서는 축구가 인기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어릴 때 축구 황제 펠레나 마라도나가 되는 꿈을 꾸며 자란다. 축구가 보편화되어 있기도 하고 가난에서 탈출해 유명스타가 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국가대항전도 자주 볼 수 있고 원정경기도 잦은 편이다. 그런데 한때 아르헨티나가 볼리비아 원정경기를 거부한 적이 있었다. 보통 수도에서 원정경기가 열리는데 볼리비아의 행정수도 라파스의 평균 고도가 3,650m이기 때문이었다. 고산반응으로 퍼져버린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라파스에서 볼리비아 선수들하고 경기를 하다 허구한 날 깨진 후 원정경기 거부를 통보했다. 그랬더니 볼리비아도 맞불을 놨고 결국 남미 리그까지 금 갈 지경이 됐다.

원정경기는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라파스 현지 적응방식이 180도 바뀌었다. 며칠씩 고산지역 적응훈련을 하던 이들은 이제 당일 비행기에서 내려 경기만 뛰고 곧장 공항으로 가서 떠나버리는 것이었다.

사실 이 방식이 효과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국 칭짱열차처럼 베이징부터 40시간에 걸쳐 서서히 고도를 높여 라싸까지 가면 조금 좋을지 몰라도 단번에 고산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고산지역 사람들도 할 말은 있다. 평소 공기가 희박하고 기압도 낮은 곳에서 살던 이들이 산 아래로 내려오면 마찬가지로 저산반응을 느낀다는 것이다.

승객들이 라파스의 케이블카를 기다리고 있다.

전 세계 수도 중 가장 높은 곳에 터를 잡은 라파스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우유니에서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도 어김없이 라파스를 거쳐야 했다. 여행의 방점이 우유니에 찍혀 있던 탓에 소금사막을 거쳐 기차무덤, 라군으로 불리는 고산지역 호수, 기암 괴석을 둘러보느라 칠레 국경 근처까지 돌아왔지만 라파스에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비행편이 없어서 하룻밤 묵었을 뿐이었다.

공항은 라파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도시 투어는 해발 4,040m 공항에서 시작됐다. 체증이 심한 도로를 벗어나 케이블카 정류장 앞에 차가 섰다. 케이블카로 잠시 구경을 시켜주나 싶었다. 하지만 라파스에서 케이블카는 서울의 지하철에 해당되는 핵심 교통수단이었다.

도시는 3,200m 지점까지 800m가 넘는 고도차를 보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주로 케이블카로 이동했다. 이 거리를 차량으로 내려오려면 산허리 골목길을 꼬불꼬불 지나야 하는데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독일 여행객들이 라파스 달의 계곡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케이블카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미국 그랜드캐니언이었다. 버스 가이드가 창밖의 동물 얘기를 하면서 승객들의 시선을 한쪽으로 고정시켰다 한 순간 다른 쪽을 보라고 한다. 그때 땅밑으로 꺼져있는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오는 느낌, 그것이었다. 사전지식도 없이 만난 라파스는 시시각각 다른 케이블카 버드아이의 시각으로 다가왔다. 꼭대기에서 내려보는 라파스와 맨 아래 종점에서 보는 라파스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달동네는 높은 곳, 부촌은 낮은 곳에 있었다. 30여 분 만에 천의 얼굴을 가진 라파스를 다 본 것 같았다.

케이블카가 없는 라파스를 상상하면 교통지옥이 따로 없을 것 같았다. 케이블카가 라파스에 도입된 것은 5년도 채 되지 않는 2014년 5월이었다. 레드 옐로우 그린 블루 오렌지라인을 개통한 라파스는 지난해 3월말쯤 6호인 화이트라인을 개통했다. 바로 그때 라파스에 도착했으니 운이 좋은 셈이었다.

당시 6개 라인 21㎞의 라파스 케이블카는 기네스가 공인한 세계 최장 케이블카 시스템이었다. 환승도 가능하다. 당시 하루 평균 15만여명이 이용했다고 한다. 그 후로도 케이블카는 계속 건설되고 있다.

라파스 마녀시장의 한 가게에 리마의 미라가 걸려 있다. 이사갈 때 마당에 묻으면 행운이 온다는 것이 원주민의 믿음이다.

지난해 9월 네팔을 가보고는 케이블카를 놓으면 좋겠다 싶었다. 산악지형인 이곳에 신도시를 만들고는 케이블카로 연결하면 하늘 아래 가장 깨끗하고 맑은 동네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중국에서 네팔쪽으로 넘어오는 다리 중간부터 비포장인 것을 보고는 기가 찼다. 카트만두의 매연을 마시면서는 두 손 들었다. 묻지 않아도 네팔 정치인들이 욕 먹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라파스 대표 관광지는 ‘달의 계곡’이었다. 모래 지형이 바람과 물에 침식되면서 달 표면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꼬불꼬불한 길에 조금만 헛디뎌도 계곡 속에 처박힐 것 같았다. 선인장이 자라고 있는 바위도 있고, 할아버지, 거북이 형상의 바위도 있었다. 독일에서 온 일가족은 사진기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기념사진 찍어주고 나중에 이메일로 보내줬다. 독일 오면 연락하라고 한다. 이렇게 알게 된 세계인들을 묶으면 새로운 투어 코스가 나올 것 같다.

라파스 시민들이 성프란체스코 성당 앞에서 친구와 연인들을 만나고 있다.
라파스 성프란체스코 성당 옆 광장에서 야외공연이 한창이다. 삼성의 광고판도 뒤로 보인다.

라파스 무리요광장은 사람 반 비둘기 반이었다. 볼리비아 독립전쟁의 영웅인 무리요 장군의 이름을 딴 이 공원 주변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의사당, 박물관, 대성당 등 볼리비아 주요 건물이 모여 있었다.

시장을 빼놓으면 여행이라고 할 수 없다. 마녀시장에는 가게마다 리마의 미라와 코카 잎, 향신료, 지갑, 목도리, 기념품 등을 팔고 있었다. 새 집으로 이사갈 때 리마의 미라를 앞마당에 묻으면 행운이 온다고 원주민들은 믿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진기를 갖다 대면 손사래를 쳤다. 이곳 바로 옆에 성프란체스코 성당이 있었다. 가톨릭과 원시신앙이 묘하게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볼리비아 행정수도 라파스의 심장부인 무리요광장이 사람 반 비둘기 반이다.

라파스에 오기 전 볼리비아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쿠바 혁명의 영웅 체게바라가 1967년 이곳에서 혁명활동을 하다 붙잡혀 사살됐다는 것 정도였다. 고산지역에서 천식으로 고생했던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가 숨진 혁명의 땅이 볼리비아였다. 그래서 괜히 삐딱한 시선으로 봤던 볼리비아였지만 순박한 사람들의 맑은 눈을 보면서 편견과 선입견을 떨쳐냈다. 문명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 답사는 바로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는 여정이기도 했다.

글ᆞ사진=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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