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삼포리 주민 대피 중 숨져
중대본, 피해자 집계에서 제외
유족 “위로 한마디 없어” 분통
“화재는 재난이고 강풍은 천재지변이랍니다. 어머니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4일 저녁 산불과 함께 불어 닥친 강풍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주민 박석전(70ㆍ여)씨의 유족들이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고 있다.
박씨는 이날 오후 9시2분쯤 “토성면 쪽에서 산불이 발생해 번지고 있으니 대피 준비를 하라”는 마을이장의 방송과 재난 문자를 보고 집을 나섰다 변을 당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모와 함께 대피를 어디로 해야 하는지 등을 마을이장에게 문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박씨는 초속 20m가 넘는 강풍에 날아온 함석지붕에 맞아 오후 10시30분쯤 숨진 채 발견됐다.
그러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튿날 새벽 이 사고를 산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박씨를 피해자 집계에서 제외했다.
하루 아침에 세상의 전부나 다름 없던 버팀목을 잃은 유족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 A(45ㆍ여)씨는 “만약 산불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왜 강풍 속에 밖으로 나왔겠느냐”고 반문했다.
유족들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사고 이후 당국의 태도다.
“사고 뒤 군청이나 대책본부로부터 위로의 말 한마디도 들은 적이 없다”는 그는 “어머니가 산불 때문에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는 것을 꼭 확인 받고 싶다”고 울먹였다.
특히 박씨는 20여년간 산불로 여러 차례 삶의 터전을 잃은 데 이어, 이번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세상을 떠나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박씨 가족은 당시 열흘 넘게 이어진 1996년 4월 죽왕마와리 산불로 축사가 불타 재산목록 1호나 다름 없던 소 10마리를 잃었다. 4년 뒤인 2000년 또 다신 덮친 화마에 또 집이 타 없어졌다. 결혼을 앞두고 준비한 자녀의 예단도 잿더미가 됐다. 20년 넘게 산불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온 셈이다.
A씨는 “불도 연기에 시커멓게 그을려야 피해자가 되는 것이냐”며 “여기 저기서 산불이 나고 대피방송이 이뤄졌음에도 산불은 피해는 재난이고 강풍은 천재지변이라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어머니의 억울함이 묻혀 버리는 거 같아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삼포리 주민들도 당국의 사과와 함께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함형복(73) 이장은 “그날 토성면 방향에서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 두려움을 갖고 대피 또는 대피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참변을 당한 만큼 정부차원의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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