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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실의 역사 속 와인] 헝가리 독립영웅이 소개한 달콤한 황금빛 와인, 토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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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실의 역사 속 와인] 헝가리 독립영웅이 소개한 달콤한 황금빛 와인, 토카이

입력
2019.04.10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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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매주 수요일 <한국일보>에 찾아 옵니다. 2018년 한국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부문 우승자인 시대의창 출판사 김성실 대표가 글을 씁니다.

김성실의 역사 속 와인. 위키미디어 제공

예로부터 단맛은 자연에서 얻기 힘들었기에 고귀한 맛으로 여겨졌다. 와인에도 그 단맛이 일품이라 지금까지 ‘군왕의 와인’이라 불리는 와인이 있다. 바로 헝가리의 토카이(Tokaj) 지방에서 생산되는 토카이(Tokaji) 와인이다.

토카이는 프랑스의 소테른, 독일의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와 함께 세계 3대 스위트 와인으로 꼽힌다. 꿀, 오렌지마멀레이드, 살구, 복숭아 등 과일향에 꽃 향과 견과류의 향이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지닌 와인이다. 그런데 그 역사 탓일까, 황금빛의 토카이 와인에는 달콤하면서도 새콤씁쓸한 맛이 배어있다.

귀부균이 옮은 포도. 위키미디어 제공

토카이는 달콤한 맛과는 달리 슬프고도 우연한 역사를 머금고 탄생했다. 헝가리가 오스만튀르크에 침략을 당한 17세기 때였다. 포도 수확기가 다가왔지만 농부들은 수확을 포기하고 피란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전란이 휩쓸고 간 뒤 농부들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곰팡이(귀부균)가 수분을 날려버려 볼품없이 말라버린 귀부포도(아수ㆍAszu)만 남아 있었다. 포도를 그냥 버리기 아까워 즙을 짰더니, 이게 웬일인가, 즙이 마치 꿀처럼 농도가 진하고 달콤하며 향기로웠다. 토카이 와인이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탄생한 순간이다.

토카이에는 분연한 투쟁의 역사도 블렌딩돼 있다. 18세기 초, 헝가리는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았다. 침략자의 폭압이 강할수록 독립의 열망 또한 강해진다는 사실을 우리 역시 잘 알지 않는가. 헝가리의 한 청년도 합스부르크가에 맞서 분연히 일어났다. 그는 트란실바니아공국 영주의 아들인 라코치 페렌츠 2세였다. 헝가리 독립을 위해 비밀결사를 주도하다 옥에 갇힌 그는, 감옥에서 탈출해 폴란드에서 독립 투쟁의 기반을 닦았다. 마치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독립 투쟁을 한 우리의 영웅들처럼. 그러나 8년에 걸친 그의 투쟁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주변국을 전전하던 그는 무장 투쟁을 지원해준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감사의 뜻으로 토카이를 선물했다.

루이 14세의 초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 인연으로 루이 14세는 토카이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사실, 루이 15세와 루이 16세 역시 토카이 애호가였다. 토카이는 이들에게 군왕의 와인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실패로 돌아간 독립의 열망이 담긴 이 와인이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한 식탁에 놓였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이 점만 놓고 본다면, 토카이에는 향락의 맛 또한 서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군왕들의 디저트 잔에 담겨 백성을 향하려는 그들의 감각을 달콤함으로 마취시켰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쟁과 투쟁을 운운하다가 베르사유라니! 그러나 이를 반전이라 여기면 안 된다. 진짜 반전은 반전의 반전 아니던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왕들이 달콤함에 취해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파리의 살롱과 카페에서는 계몽주의 학자들과 백과전서파 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재미있게도 프랑스혁명의 싹이 움튼 그 자리에도 토카이 와인이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토카이는 혁명의 나무를 자라게 하는 비료였던 것이다.

한편 대영제국의 빅토리아여왕은 81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합스부르크-헝가리제국의 프란츠요제프 1세에게 토카이를 생일 선물로 받았다. 여왕이 살아온 개월 수만큼 와인을 받았다 하니, 하루에 한 병씩 마셔도 다 못 마실 만큼을 매년 받은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음악가 하이든은 애주가였는데, 그는 급료를 와인으로 받기도 했다. 특히 그는 후원자 에스터 하지 백작에게는 “와인을 주실 거라면 저의 건강을 위해 토카이를 주십시오”라고 간곡하게 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쯤 되면 토카이 와인에는 ‘매력’만이 아니라 ‘마력’이 있다고 봐야 할 정도다. 또 유럽 왕실과 사교계는 물론, 민간에서는 약으로도 쓰였다고 하니, 가히 18, 19세기 최고의 명품 와인이라 할 만하다.

헝가리 화폐 500포린트에 새겨진 라코치 페렌츠. 위키미디어 제공

아무튼, 헝가리는 라코치 페렌츠를 기념해 헝가리 500포린트 화폐의 인물로 올려놓았다. 작곡가 리스트는 그를 위해 헝가리 랩소디 15번 라코치 행진곡 a단조를 작곡했단다.

4월 11일은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다. 그런데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은 정당한 평가는 차치하고 교과서에서도 사라질 판이다. 토카이의 달콤함 뒤에 올라오는 씁쓸함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순전히 그 역사 탓일까.

시대의창 출판사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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