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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지옥에서 한센인이 신음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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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지옥에서 한센인이 신음하고 있어요”

입력
2019.04.05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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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 도성마을’ 사진전 여는 박성태 작가 

박성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박성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지만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이번 사진전이 악취와 석면으로 뒤덮인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마을에서 처절히 신음하는 이들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2014년 7월 ‘우리 안의 한센인-100년 만의 외출’이라는 주제의 사진전을 통해 혈연마저 꽁꽁 숨기고 은둔해왔던 한센인들을 처음 세상 밖으로 드러내게 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박성태(52)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그가 이번에는 국내 최대 악취ㆍ석면 지옥으로 불리는 여수애양원 도성마을을 5년 동안 촬영한 연작을 발표한다.

이번 작품은 국내 첫 한센인 정착촌인 전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도성마을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한센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조명했다. 박 작가는 “이전 작품이 한센인에 대한 편견과 경계를 허물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의 한센인에 초점을 맞췄다면 연작은 그들이 처한 처절한 삶의 조건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1975 도성마을’ 주제로 열리는 사진전은 여수시 신기동 대안공간 노마드갤러리에서 6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한 달간 열린다. ‘1975’는 도성마을이 입주식을 가진 1975년 5월을 의미한다. 1965년부터 1978년 2월까지 국내 첫 한센병 치료병원인 여수애양원 원장으로 재직한 도성래(미국명 Stanly C. Topple) 선교사가 자신의 한국 이름을 따서 지었다. 한때 3,000여명이 거주하던 마을에는 현재 240여명이 살고 있다.

그가 발표하는 30여점의 사진에는 유배지와 같은 철저히 갇힌 공간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한센인의 절망과 고통이 생생히 드러난다. 폭격을 맞은 듯한 폐 축사, 슬레이트 지붕에서 나오는 1급 발암물질 석면, 수십 년 째 이어온 분뇨 악취, 쓰러진 폐가, 인근 여수산단에서 365일 뿜어내는 유해화학물질 속에서 고통 받는 마을의 실태를 담았다. 도성마을은 전체면적 19만9,700여㎡ 중 슬레이트 축사만 11만㎡(770동)에 달한다.

한때 3,000여 명이 넘게 거주했던 도성마을은 현재 고령의 한센인을 포함해 24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한센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사회와 격리돼 각종 차별 속에 살아 온 이들이 이제는 석면 슬레이트와 분뇨 악취, 공단 매연 등의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 박성태 작가 제공
한때 3,000여 명이 넘게 거주했던 도성마을은 현재 고령의 한센인을 포함해 24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한센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사회와 격리돼 각종 차별 속에 살아 온 이들이 이제는 석면 슬레이트와 분뇨 악취, 공단 매연 등의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 박성태 작가 제공

박 작가는 “각종 분뇨에서 쏟아지는 냄새를 맡는 게 일상이 된 한센인들은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악취에 시달리고 있지만 관계기관은 수십 년 동안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센인 정착촌이라는 이유만으로 우체국 집배원이 들어오지 않고 불이 나도 소방차가 출동하지 못한 곳이 도성마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진작업을 위해 마을에서 만난 한센인 2세 하태훈(45)씨와 동갑내기 문미경씨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박 작가는 “마을 입주식이 있던 1975년 5월에 태어나 한 번도 이곳을 떠나지 않은 하씨는 고교 시절 별명이 닭똥이었다”며 “몸에서 나는 심한 악취 때문에 친구가 붙여준 것인데 친구들이 무서워 동네에 놀러 오지도 않고 밥도 함께 먹지 않았던 하씨의 슬픈 기억은 차마 말로 다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는 “미경씨는 더 이상 마을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간절한 심정으로 지난해 7월 ‘우리 마을을 살려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냈지만 메아리에 그쳤다는 하소연을 접하고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하씨와 문씨는 박 작가 전시 오프닝이 열리는 6일 직접 전시장에 나와 마을 실태를 알릴 예정이다. 한센인 2세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신분과 마을 실태를 밝히는 것은 처음이다.

이기원 원로 사진가는 “박 작가는 더 깊고 더 가까이 도성, 한센인 마을에 다가가면서 단편적 인 일상의 파편을 모아 더 큰 틀로 사진적 서정의 서사를 만들어냈다”며 “이번 사진 작업에서 아직도 아물지 않고 지속되는 그들의 사회적 소외와 상처를 여실히 드러내 상처의 원인과 현실을 선명한 사진적 언어로 100년만의 외출보다 깊고 따뜻하고 심오한 시각으로 표현해냈다”고 평가했다.

박 작가는 “도성마을은 우리 사회의 인권의 척도이자 인권의 현주소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다”며 “이제는 1세대 한센인들 못지않게 고통을 겪고 있는 한센인 2, 3세대들이 우리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여수=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1975 도성마을’ 전시작 중 하나인 이 사진은 국내 80여개 한센인 정착촌 가운데 유일하게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는 도성마을이 슬레이트로 뒤덮여 석면 지옥과 다름없는 환경을 생생히 담았다. 슬레이트 축사 지붕 건너편으로 보이는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는 매일 각종 유해화학물질을 쏟아내 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박성태 작가 제공
‘1975 도성마을’ 전시작 중 하나인 이 사진은 국내 80여개 한센인 정착촌 가운데 유일하게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는 도성마을이 슬레이트로 뒤덮여 석면 지옥과 다름없는 환경을 생생히 담았다. 슬레이트 축사 지붕 건너편으로 보이는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는 매일 각종 유해화학물질을 쏟아내 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박성태 작가 제공
계란은 한센인 회복자들이 자립을 위한 생계 수단이자 꿈의 상징이다. 박 작가는 한센병 후유증으로 손이 잘린 도성마을의 한센인 회복자가 계란을 잡으려고 하지만 잡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포착했다. 박 작가는 “한센인들이 자신들의 꿈을 스스로 잡을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숭고함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박성태 작가 제공
계란은 한센인 회복자들이 자립을 위한 생계 수단이자 꿈의 상징이다. 박 작가는 한센병 후유증으로 손이 잘린 도성마을의 한센인 회복자가 계란을 잡으려고 하지만 잡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포착했다. 박 작가는 “한센인들이 자신들의 꿈을 스스로 잡을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숭고함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박성태 작가 제공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뒤덮인 축사 770동은 대부분 폐허 상태로 남아 도성마을 주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전남도보건환경연구원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고 진단했지만 관계기관에서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박성태 작가 제공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뒤덮인 축사 770동은 대부분 폐허 상태로 남아 도성마을 주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전남도보건환경연구원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고 진단했지만 관계기관에서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박성태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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