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큐비즘 걸작 ‘우는 여인’과 월드컵 축구공

※ 경제학자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 값이나 화가의 수입을 가장 궁금해할 거라 짐작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생각해보곤 한답니다. 그림 속에서 경제학 이론이나 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죠.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할 때의 흥분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픈 경제학자,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파블로 피카소 ‘우는 여인’(1937), 영국 테이트모던, 60.8×40.8㎝

보통 사람들은 피카소의 그림을 볼 때면 조금은 당황하게 된다. 왜냐하면 대가의 그림이 유치원 벽에 붙은 어린아이들의 그림과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20세기의 불세출의 화가가 그렸다니 못 그렸다고 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미술치료나 심리상담을 받는 청소년이 그린 그림이라면 상담사는 분명 무슨 문제가 있는 아이로 여기기 십상일 것이다.

◇입체를 평면에 옮기는 비법

피카소는 왜 이렇게 그린 것일까? 그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카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시선으로 다시 보아야만 한다. 그림은 2차원의 평면이므로 한 방향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그림 속 대상은 3차원 공간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정면, 뒷면, 위, 아래 그리고 옆에서… 피카소는 한 방향에서 바라보아서는 사물의 완전한 형태를 파악할 수 없다고 보았고, 오브제(objet)를 완전한 형태로 그리고 싶어 했다. 즉, 3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그려야 할 대상인 인물이나 자연을 2차원의 캔버스로 옮겨놓는 작업이 그의 과제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작업, ‘미션 임파서블’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3차원의 존재를 2차원에 표현할 수 있을까? 피카소는 입체적 형태를 2차원 평면에 표현하기 위해서 대상을 여러 측면의 관점에서 해체한 후 다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과는 정반대 과정을 거치는 축구공의 제작공정을 생각해보자. 월드컵에서 사용한 축구공들을 보면 매 대회마다 그 형태가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동안 축구공의 제작 기술의 발전으로 공을 만드는 조각의 크기는 점차 커지고 조각 수(數)는 따라서 점점 줄어들어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조각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공의 탄성이나 반발력 등 성능은 향상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불변의 사실은 축구공은 3차원 구(球)의 형태이지만 2차원의 평면 조각을 가지고 만든다는 점이다. 그러나 피카소의 입체파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은 축구공을 만드는 것과는 정반대의 작업을 필요로 한다. 피카소는 그만의 예술적 영감으로 여러 시점에서 보이는 평면적 형태를 2차원의 캔버스에 재구성 혹은 재배치하는 작업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불가능한 미션의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피카소가 경제학자였다면

여기서 그가 1937년에 그린 우스꽝스러운(?) 명작 ‘우는 여인(The Weeping Woman)’을 보자. 이 그림은 피카소가 어떻게 입체주의 화풍을 완성해가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여인의 앞모습과 옆모습을 동시에 그리면서 그녀의 고통스런 얼굴을 기하학적 형태로 해체해서 일그러진 표정을 잘 담아내고 있는데, 다양한 각도에서 사물을 보아야만 숨겨진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 피카소의 탁월한 능력이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인의 눈물은 뺨을 따라 흘러내리지 않고 그녀의 보랏빛 눈물은 막 떨어질 듯 눈가에 맺혀 있는데 이 한 방울 눈물 속에 그녀의 모든 슬픔이 결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눈물방울은 2차원의 평면적인 눈물이 아니라 마치 3차원 그래픽 디자인으로 표현한 것 같은 눈물이다.

피카소가 이처럼 여러 각도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표현하려고 한 이유는 변하지 않는 사물의 본질적 형태를 보여주려는 의욕 때문일 것이다. 어떤 대상을 한 위치와 시점에서만 관찰한다면 그것은 오직 그 사물의 한 부분에 관한 진실만을 담고 있게 될 것이지만, 그는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오브제를 관찰하고 투시하여 보려고 하였으며 2차원적 화면에 각 시점에서 인식된 형상을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한 것이다.

피카소는 그동안의 전통적인 기법인 ‘단일 초점에 의한 원근법’을 포기한 것이다. 전통적 회화에서는 원근감을 표현하려면 화가의 고정된 단일 시점에 의해서 보는 사람들이 입체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캔버스에 표현하였다. 이 같은 방식은 경제학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경제체제 안에는 여러 형태의 시장이 존재한다. 여러 시장의 움직임을 동시적으로 파악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한 시장만을 집중해서 분석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다른 시장들은 일시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이처럼 경제학자의 시선을 한 시장에 고정시키고 그 시장 내부 움직임만을 관찰하는 방식을 ‘부분균형분석(partial equilibrium analysis)’이라고 한다. 전통적 회화에서 응용되는 원근법과 같은 고정된 단일시점 방식이 이처럼 경제의 부분분석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시장이 동시에 움직이는 현실경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다양한 시장의 변동을 한꺼번에 고려하려면 피카소의 작업방식을 응용해야만 한다. 한 시장의 다른 시장에 대한 영향, 그리고 다른 시장으로부터의 받는 영향 등을 모두 고려하고 분석하는 방식을 ‘일반균형이론(general equilibrium theory)’이라고 부른다. 피카소는 마치 여러 개의 시장을 동시에 분석하는 일반균형이론을 다루는 경제학자의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 큐비즘의 탄생을 알린 작품으로 꼽힌다.
◇사물의 이면을 드러내는 큐비즘

큐비즘(Cubism)이라고 일컬어지는 입체주의는 1907년 피카소가 세상에 내놓은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이라는 작품으로 시작되었다. 피카소는 아프리카 조각품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는데 이 작품은 거기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 그림 속에는 5명의 벌거벗은 여인들이 여러 조각을 붙여놓은 듯한 기하학적인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일찍이 세잔(Paul Cezanne)은 자연의 모든 형태를 구(球)형, 원통, 원추형 등으로 단순화 작업을 시도했는데, 피카소는 이런 세잔의 작업을 뛰어넘어 미술의 근본적인 본질은 형태에 있다고 보고 면들을 재구성하여 입체주의 화풍을 비로소 수립한 것이다. 미술평론가 루이 보셀(Louis Vauxcelles)은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의 문을 연 브라크(Georges Braque)의 전시회를 평가하면서 ‘입체(cubes)’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이 말에서 입체주의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야수파가 색채의 혁명이라면 입체파는 형태의 혁명인 셈이다.

피카소는 무릇 화가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 그 사물의 보이지 않는 이면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일반시장균형상태를 분석하는 경제학자처럼 여러 시점을 통해서 대상의 보이지 않는 면까지 보여주기 위하여 큐비즘의 기법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것이 피카소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형태의 극단적인 해체에 의한 단순화, 추상화를 통하여 피카소만이 그릴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점이 바로 피카소가 위대한 이유일 것이다.

◇피카소의 청색, 그 희망의 빛깔

혹시 파리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몽마르트르 언덕 올라가는 길에 있는 ‘세탁선’이라고 불리는 ‘바토 라부와(Le Bateau Lavoir)’를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 피카소나 모딜리아니가 배고픈 시절에 작업활동을 했었던 곳이다. 그리고 몽마르트르 언덕 뒷길에 있는 당시 카바레였던 ‘라빵 아질(Lepin Agil)’에도 가보자.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서 우디 앨런(Woody Allen)이 아름답게 보여준 파리의 ’벨 에포크(Belle Epoche)’ 시절의 예술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피카소가 위대한 화가라는 점을 일깨워주기 위해 젊은 시절에 그린 그림을 하나 보기로 하자. ‘압생트를 마시는 여인(The Absinthe Drinker)’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우리는 피카소가 얼마나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이 그림은 피카소가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 막 정착했을 때인 1900년대 초반 소위 ‘청색시대(Blue Period)’에 속하는 작품인데, 푸른색에서 느껴지는 여인의 슬픔과 고독이 그대로 전달되는 듯하다. 당시 그에게 청색이란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도구였다. 젊은 피카소에게는 빈곤과 절망, 그리고 고독의 색깔이었다. 피카소도 젊은 시절에 이런 우울하고 비관적이고 희망 없는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한다면 그의 청색이 오늘날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어쩌면 역설적으로 희망의 빛깔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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